헛묘/ 최은묵 헛묘 최은묵 영문도 모른 채 떠났던 집 문패뿐인 빈 집에는 종일 굶은 바람이 앉아 있었다 부엌은 닫혔고 방문 틈에선 흙냄새들이 기어다녔다 오후에 사람 몇 찾아와 문패를 닦고 갔다 각진 몸으로 우직하게 주인을 기다리는 문패 볕을 수확하지 못한 빈집 지붕은 초저녁부터 산 그림자.. 잡지에서 읽은 시 2014.03.13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오은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오은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대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면 가능 해진다 나는 누구에 속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냄비 속에서 불안이 끓어 넘치 고 있었다 배고픔과 배 아픔이 동시에 찾아왔다 아침에는 심술을 부리고 도리질을 쳤다 손길이 다가오면 뿌리.. 잡지에서 읽은 시 2014.03.01
밤은 판화처럼/ 이혜미 밤은 판화처럼 이혜미 목련이 지기 전에 도달해야 하는 왕국이 있어, 젖은 발을 끌며 강가 로 이어지는 돌길을 걸었다 무수히 흘러내리는 실선들을 따라 하루 의 반대 방향으로 모든 것이 흘렀다 끝없이 이어지는 봉우리에 대한 내 서신은 그대의 유한함을 일깨웠 을까? 밤새 수북이 쌓인.. 잡지에서 읽은 시 2014.03.01
고흐의 잠/ 유안나 고흐의 잠 유안나 당신의 방에 들어갔어요 푸른 벽이 하늘로 데려갔지요 알 수 없는 동그라미들이 떠다니고 잇었어요 다시 바다 속으로 데려가데요 아가미 헐은 물고기들이 수초 사이로 숨어들고 있었어요 들여다보면 당신 같고 나 같고 우리는 아가미를 맞대고 한참을 바라보았죠 갈색.. 잡지에서 읽은 시 2014.02.27
철도원 2014/ 금은돌 철도원 2014 금은돌 견갑골 사이로 총알이 관통한다. 무엇을 먼저 흘려야 하나? 비상구는 이미 비상구가 아닌 지 오래 방어선을 뚫고 나가려는 찰나, 저 총구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정부군에게 포위되어 무슨 색깔을 내밀어야 하나? 붉은 피가 떨어진 자리에 입김이 사라진다. .. 잡지에서 읽은 시 2014.02.27
꽃구경/ 최문자 꽃구경 최문자 1 꽃은 몇 겹으로 일어나는 슬픔을 가졌으니 푸른 들개의 눈을 달고 들개처 럼 울고 싶었는지 몰라 저 불안전한 꽃잎 하나만으로 죽음도 환할 수 있으 니 저 앏은 찢어짐 하나 가지고 우울한 우물을 파낼 수 있으니 이게 바람 대 신 울어주는 창호지 문인지 몰라 꽃은 죽.. 잡지에서 읽은 시 2014.02.27
시인 선서/ 김종해 시인 선서 김종해 시인이여, 절실하지 않고, 원하지 않거든 쓰지 말라.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으면 구하지 말라. 스스로 안에서 차오르지 않고 넘치지 않으면 쓰지 말라. 물 흐르듯 바람 불듯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을 좇아가라. 가지지 않고 있지도 않은 것을 다듬지 말라. 세상의 어느 .. 잡지에서 읽은 시 2014.02.17
달을 짜는 연금술/ 이인철 달을 짜는 연금술 이인철 스웨터를 풀어 달을 짠다 어머니 생전에 입은 그녀가 빠져나간 둥굴 하나가 허물어지며 하늘에 달이 짜이고 있다 뜨개질을 하는 손이 달 쪽으로 들리는 걸 보면 그녀는 달의 동굴을 원했는지 모른다 밤마다 달은 커지고 그녀가 두고 간 휘발되는 동굴은 허물어.. 잡지에서 읽은 시 2014.01.09
불쇼/ 정채원 불쇼 정채원 불길은 왼쪽 가슴으로 번져 나갔다 어깨를 타 넘어 혀까지 타들어 갔다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오는 불덩이, 한동안 입술을 깨물고 문을 걸어 잠갔 던 것도 모두 허사였다 이리저리 막말이 불똥처럼 튄다 외계인은 왜 꼭 사 람처럼 생겼을까 천사처럼 잘 웃을까 그 입에서 전.. 잡지에서 읽은 시 2013.12.25
비문/ 김명서 비문 김명서 1. 신문을 펼친다 정리해고, 무자비한 포식자의 리스트에 오르지 않으려고 죽을 힘 다해 회사에 몸 바쳤 다고 해고노동자 허탈하게 웃고 있다 2. 저위도의 습지를 들여다본다 "노동자와 손잡고 희망을 노래한 시인이 구속되다" 좁쌀만 한 머리말, 신문모서리에 부딪힌다 깨진 .. 잡지에서 읽은 시 2013.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