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오은

검지 정숙자 2014. 3. 1. 15:48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오은

 

 

  누구나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대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면 가능

해진다

  나는 누구에 속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냄비 속에서 불안이 끓어 넘치

고 있었다 배고픔과 배 아픔이 동시에 찾아왔다

 

  아침에는 심술을 부리고 도리질을 쳤다 손길이 다가오면 뿌리쳤다

자발적으로 가난해졌다

 

  언제고 활짝 피어날 수 있단다 대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면 막연해진

  나는 언제에 속하는지 자신이 없었다 냄비가 뜨거워서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쉽게 달아오르고 재빨리 식어버렸다

 

  낮에는 냄비 바닥처럼 우는 소리를 했다 전체가 까매지고 한곳은 특

히 새까매졌다 우발적으로 우울해졌다

 

  밤이 되었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늘 한 말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움찔움찔 몸서리를 쳤다 부끄러워

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내일 할 말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설래서 이불을 또 한 번 뒤집어썼다 한여름에도 꼭 덮고 자야 돼 덮어

야 안심이 된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말했다 명사와 조사가 결합하면 근

사해진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에는 착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불을 덮고

  가만히 밤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생』2013, 겨울호

 

 

  * 『이상』2014-봄호/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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