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쇼
정채원
불길은 왼쪽 가슴으로 번져 나갔다 어깨를 타 넘어 혀까지 타들어 갔다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오는 불덩이, 한동안 입술을 깨물고 문을 걸어 잠갔
던 것도 모두 허사였다 이리저리 막말이 불똥처럼 튄다 외계인은 왜 꼭 사
람처럼 생겼을까 천사처럼 잘 웃을까 그 입에서 전갈이 나온다고 불로 막겠
다고 내 입에서 나온 불덩이에 내 옆구리 눌어붙고…… 타는 냄새 진동해도
멈추지 못한다 불기둥을 맨가슴 위로 흔드는 차력사처럼
초승달 흉터는 심장 바로 위에 남았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물린 자리가
눈웃음친다 초승달 뜬 앞산이 슬퍼 보인다 일 년 열두 달 만월을 보지 못
하는 마을, 산사태로 뼈마디를 드러낸 벼랑에 벼락 맞은 나무가 있다 계속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죽을 것 같은 뿌리가 드러나 보인다 검게 탄 나무
둥치가 두 동강 나고도 물을 빨아들이는 걸 멈추지 못하는지 실뿌리는 끙
끙거리며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아물지 않은 절개지가 큰비에 붉은 토사
를 울컥거리고
쪼글쪼글해지는 날까지 장작 불구덩이에서 기름방울을 뚝뚝 흘린다 바
람이 끼얹는 모래 한 줌에 피식거리며 뒤척인다 공중제비하며 첩첩 화염 바
퀴를 통과하며 만 리 길 가는 가죽 부대들, 그슬린 옆구리로 쉬지 않고도 모
래 알갱이 새어 나간다 어제 불덩이의 고통은 잊고 새 불덩이를 보면 달려
들어 삼키는 길에서
비공개 불쇼가 끝난 후 잿더미 속에는 반짝이는 금니나 뽀얀 구슬 몇 알,
부러진 뼈마디를 잇던 나사못 몇 개도 남는다 긴 비에 떠내려가는 반쯤 타
다 만 기억들, 부서진 정강이뼈들
*『시작』2013 <겨울호>에서 옮김
* 정채원/ 1996년『문학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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