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묘
최은묵
영문도 모른 채 떠났던 집
문패뿐인 빈 집에는 종일 굶은 바람이 앉아 있었다
부엌은 닫혔고 방문 틈에선 흙냄새들이 기어다녔다
오후에 사람 몇 찾아와 문패를 닦고 갔다
각진 몸으로 우직하게 주인을 기다리는 문패
볕을 수확하지 못한 빈집 지붕은
초저녁부터 산 그림자가 차지해 버렸다
낯선 사람에게 목이 묶여 끌려간 강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담 곁 풀잎이 바스락거릴 때마다 환청처럼 강아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래전 나는 아침에 뜨던 달처럼 지워졌다
옛집의 문패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기다리던 가족들, 하늘 훤한 땅에 집 한 채 새로 지었으니
등 굽은 땅에 내가 없더라도
내 아이들 함께 모여 맘껏 서러워할 수 있겠다
속 빈 땅을 지키는 돌비석이 헛묘를 쓰다듬는 밤
지워진 사람을 찾으러 별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시로여는세상』 2014-봄호
* 최은묵/ 200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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