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신호등/ 김제욱 K의 신호등 김제욱K 교차로의 늪에 K의 두 무릎이 잠겨 있다 신호등이 말했다던 알리바이가 흔들리는 K에게 다가와 그날의 순간을 진술했고 교차로의 경적 너머로 나는 뿌려졌다. 하늘과 구름을 가득 품으며 남모르게 분절되며 꿈틀거렸을 K. 조각난 얼굴이 바닥을 메웠다. K가 짐승처럼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9.13
수국에 이르다/ 홍일표 수국에 이르다 홍일표 솜사탕을 수국 한 송이로 번안하는 일에 골몰한다 솜사탕은 누군가 내려놓고 간 벤치 위의 따듯한 공기 헐떡이다가 그대로 멈춘 수국은 수국을 통과하며 말한다 하늘에서 엎질러진 구름이 완성한 노래가 나무젓가락에 매달려 반짝이는 동안 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9.13
길을 여는 중/ 최도선 길을 여는 중 최도선 햇살 눈부신 노을카페 통유리 벽에 쪽빛 등 푸른 딱정벌레 한 마리가 기어오르다 굴러 나자빠졌다 네 발로 허공을 휘저으며 일어나려고 몸부림을 친다. 몸을 일으켜 햇살이 통과하는 유리의 밖을 빤히 내다보며 그 쪽으로 몸을 구부려 보지만 그 곳은 가장 가깝고도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9.13
백년 후에 없는 것/ 함기석 백년 후에 없는 것 함기석 강경희 강기원 강동우 강성은 강유정 강은교 강인한 강정 강정규 강현국 강희안 고봉준 고영 고운기 고은 고진하 고찬규 고형렬 공광규 공지영 구경미 구모룡 구효서 권성우 권오삼 권정우 권혁웅 금동철 길상호 김경인 김경주 김경후 김근 김기택 김남조 김록..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9.12
백일홍에 들다/ 이정오 백일홍에 들다 이정오 그늘이 붉다 나는 여전히 소화가 덜 된 채 나무 아래서 울고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수십 년 동안 되새김질만하다 떠났고 지게 하나 덜렁 남았다 '에미걱정 하지 말고 그만 가거라' 어머니는 절대 나를 되새김질하지 않는다 한밤중 태반을 삼킨 어미 소가 어린 것..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9.12
파일함/ 강서완 파일함 강서완 붉은 살 넘치는 햇살 탱탱한 토마토 푸른 독 흩어진 바람 천일의 기도 소말리아 어린이를 품어 안은 정애 씨, 칠순에 검정고시 치른 미자 씨, 할머 니 바리스타 민정 씨, 이순(耳順)에 신춘문예 등단한 영순 씨… 잘 익은 속 눈부신 껍질로 흰 접시에 놓인 궁극 꽃보다 꽃말..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9.10
모텔 바빌론/ 김명서 모텔 바빌론 김명서 -사람이 울고 있다고 해서 꼭 슬픈 것도 아니고 웃고 있다고 해서 꼭 기쁜 것도 아니다 딱 1분만이라도 깊은 눈으로 바라보면 안다 작은 악절 속 거꾸로 매달린 음표들이 숨구멍을 열어놓았다 저 무수한 음표들, 노래가 되지 못한 것은 그림자가 된다는데 그림자는 세..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9.10
自畵像/ 최서림 自畵像 최서림 피자빵처럼 얼룩덜룩한 얼굴로 오십견이 있는 어깨를 빙빙 돌리고 있다 수전증이 있는 그의 오른팔에는 홀로 사는 누나처럼 목이 긴 재두루미가 둥우리를 치고 산다 가늘게 떨리는 긴 부리 모양의 손이 가 닿으면 모든 사물들은 껍질을 벗고 푸른빛을 드러낸다 삶의 피멍..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9.05
벚꽃 져요/ 이 신 벚꽃 져요 이 신 내가 하루 종일 만들던 스물네 개의 지침이란 거요 한 눈금씩 가리키며 째깍, 검붉은 나이테에 갇히게 되는데요 내 집들이 내 가슴에 점, 점, 점, 응고되는 하얀 혈액 같은 거요 무죄임을 항변하는 누명 쓴 자들이 눈송이처럼 펄펄 탈옥하네요 그러나 모두 울타리를 넘는 ..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8.05
칸트의 생활 규칙/ 박찬일 칸트의 생활 규칙 박찬일 2차 자리에는 절대 참석하지 않는다 정리해야 할 것으로 冊을 우선시 둔다 막판에 冊을 불태우는데 가급적 동의를 구하지 않는다 운동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한다 가장 편한 죽음에 관심을 가질 것 코나투스를 가장 높이 평가할 것 다시 돌아오지 말 일 *『시와경.. 잡지에서 읽은 시 2012.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