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꽃구경/ 최문자

검지 정숙자 2014. 2. 27. 02:25

 

 

       꽃구경

 

       최문자

 

 

1

  꽃은 몇 겹으로 일어나는 슬픔을 가졌으니 푸른 들개의 눈을 달고 들개처

럼 울고 싶었는지 몰라 저 불안전한 꽃잎 하나만으로 죽음도 환할 수 있으

니 저 앏은 찢어짐 하나 가지고 우울한 우물을 파낼 수 있으니 이게 바람 대

신 울어주는 창호지 문인지 몰라 꽃은 죽고 나무만 살아 있으니 나무 속에

끓고 있던 눈물의 일부일지 몰라 검은 점으로 부서졌다가 재가 되는 꽃 마

지막 뼈일지 몰라 밤새 꽃을 내다버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죽은 동그라미

의 질감으로 바람에게 끌려가는 소리 간지러웠던 피 모두 흘려버리고 매운

꽃나무 뿌리를 다시 찾아가는 순간일지 몰라

 

2

  꽃들이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공허한 내 등뼈를 구경하고 있다 언제부터

이 곳에 꽃이 없어졌을까 언제부터 이곳에 이처럼 딱딱한 굵은 슬픔 한 줄

그어져 있을까

 

3

  어떤 봄날에 꽃 보러 가는데 불현듯 배가 고팠다 배고프면 위험한데 깜깜

한 짐승이 되는데 눈 먼 푸른 박쥐처럼 더러운 바닥에도 엎드리는데 허기

져도 꽃은 여전히 꽃이 되고 있었다 떨릴 때에도 모른 체하고 하루씩 하루

씩 꽃이 되고 있었다

 

4

  그동안 산맥과 구름 사이에 너무나 많은 꽃잎을 날렸다 어떤 슬픔인지도

모르는 그걸 멈추려고 거기다 너무나 많은 못을 박았다 

 

 

  * 『시와표현』2014 -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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