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346

이혜선 수필집 『아버지의 교육법』, 「아버지의 교육법」

아버지의 교육법     이혜선     교육열 높고 진보적인 시골 선비  아버지는 종손으로 태어나서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무거운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평생동안 선산을 떠나지 못하고, 청운의 뜻을 펴지 못하신 채 고향이라는 늪 속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 이무기이셨다.  함안 군청으로, 마산 시청으로 공무원이 되어 떠나 있던 것도 잠깐이고,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옥열리 무근절의 대대로 내려오는 선영과 집이 안 잊혀 그예 돌아와 파묻히고 마셨다.  통 말씀을 안 하셨으니, 일제 식민지 아래서의 공무원 생활이, 굽힐 줄 모르고 아부를 모르는 성격에 맞지 않은 것도 한 이유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서당에서 익힌 한학漢學과 신학문이 조화되어, 고루한 유교적 가풍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진보적인 사고를 이해하려고 ..

에세이 한 편 2024.06.18

김추인_기행산문집『그러니까 사막이다』 「머나먼 나의 스와니, 아, 아프리카」

머나먼 나의 스와니, 아, 아프리카      김추인    또 떠날 것을 꿈꾼다. 미답의 낯선 땅을 꿈꾼다.  역마살 탓일 게다. 지리산 가시내는 늘 진화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함께 내가 누구인가를 파고들었었다. 우리는 모두 한정판이므로 자기답게 살아야 마땅하므로··· 이런 자의식과 역마살이 나를 시인으로 세상을 떠돌게 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언제였을까. 인사동 전시관에서 만난 '붉은 나미브'의 사진! 그 모래톱들은 오래 부동으로 나를 세워  놓았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저 붉은 모래의 나라를 가야 한다고 내 안의 여자에게 속삭였다. 그러고도 10년이 훌쩍 가버리는 동안, 神이 내 그리움을 엿보셨는가, 그 꿈이 실현되게 생겼으니···   문득 정초의 꿈이 선명하게 온다. 밤하늘 백조자리가 은빛 날갯짓으..

에세이 한 편 2024.05.20

김추인_기행산문집『그러니까 사막이다』에서, 詩) 푸치니가 토스카니니에게

푸치니가 토스카니니에게      김추인    크리스마스 날 FM에서 엿들은  아니리 한 대목이었다     동글동글 굴러가는 목소리의      푸치니와 토스카니니는 친구였어요 그땐 젤 좋아하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빵을 선물하는 것이 풍습이었죠   무의식 중에 푸치니는 토스카니니에게 빵 선물을 보낸 것이 생각났는데 곰곰 생각하니 다툰 기억이 났어요  혹시 용서를 비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돌려보내진 않을까 전전긍긍 생각다 못해 전보를 쳤지요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보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랬더니 답신 오기를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먹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푸치니와 토스카니니를 들으며  창밖의 눈발처럼 희죽희죽 웃었다  나도 그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에세이 한 편 2024.05.19

42.195/ 신선희

42.195 신선희 42.195㎞. 마라톤 풀코스 거리다. 일반사람이 뛸 수 있는 거리일까. 아니 정확히 내가 뛸 수 있는 거리일까가 궁금했다. 5년 전, 우연히 춘마를 알게 되었다. 춘마를 간다는 젊은 친구에게 춘마가 뭐냐하니 춘천마라톤의 줄임말이라 했다. 줄임말도 낯설지만 일반인이 마라톤을 뛴다는 사실이 더 생소했다. 놀란 나에게 그 친구는 곧 있을 동네 마라톤 하나를 툭 던졌다. 한 번 해보라며 심지어 잘할 것 같다며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 옛날 체력장 오래 달리기가 전부인 내가 이 나이에 굳이 뛸 거까지야··· 그러나 궁금했다. 그래서 5㎞만 뛰어보자며 나갔다. 죽는 줄 알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는 꼬이고 도대체 끝은 보이지 않고 겨우 죽기 직전 들어왔다. 나에게 마라톤은 이것으로 충분했고 ..

에세이 한 편 2024.04.22

혼자 먹는 점심/ 사공정숙

혼자 먹는 점심 사공정숙 평일 낮 시간에 아들과 점심을 먹었다. 모처럼 휴가를 받아 회사를 쉬는 아들과 얼굴을 맞대고 식탁에 앉았으니 즐겁지 않을 리 없었다. 한가로이 식사를 즐기는 가운데 문득 아들이 물었다. "엄마, 평소에는 점심을 어떻게 드시죠? 혼자서 드셔야겠네." 새삼스럽게 딱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걱정을 해주었다. 철이 들었을까. 아들은 혼자서 밥을 먹는 엄마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다가 누군가가 제 머리통을 통 하고 칠 때의 자극을 받은 양 아주 일상적인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린 것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혼자서 밥을 먹으려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모른다고 하였다. 아들은 그런 제 엄마가 가여운지 친구들이나 가까이 사는 이모라도 불러서 같이 식사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

에세이 한 편 2024.04.21

이판사판문인(理判事判文人)의 꽃나무 그늘/ 김홍은

이판사판문인理判事判文人의 꽃나무 그늘 김홍은/ 수필가 이판사판문인理判事判文人 문학에도 이판사판문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가 글은 안 쓰고 문학의 길을 선도하는 인도작가引導作家의 역할만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소재를 찾아서 서론, 본론, 결론을 설명하다 보면 결국은 내가 쓰고자 하였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쓰고 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남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다운 작가를 배출하지 못함에 늘 욕심만 앞세우고 채찍을 하지만 좋은 작품 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임에 고민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수강신청을 하고 작가의 길을 걷는 수필가가 좋은 수필을 발표하지 못하면 자신이라도 문단에 좋은 글을 써야 하는데, 못 씀에 한탄뿐입니다. 그동안 각 문학지에 신작수필..

에세이 한 편 2024.04.11

문학 1번지 종로와 김소월/ 오병훈(수필가)

문학 1번지 종로와 김소월 오병훈/ 수필가 종로는 서울의 행정 중심이며 600년 동안 나라의 문화와 교육, 경제를 이끌어온 고장이다. 특히 현대문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염상섭 같은 수많은 문인이 종로에 거주하면서 문필활동을 해 왔다. 그래서 종로를 문학 1번지라 하는지 모른다.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김소월 또한 종로인이다. 그가 종로구 연건동 121번지 김억이 운영했던 에 기숙하면서 1925년 12월 25일 첫 시집 『진달내꽃』을 펴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옛 지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한국문인협회 종로지회에서는 남한 유일의 소월 유적지에 1918년 3월 16일 '소월 옛집'이라는 동판을 부착하여 이곳이 소월이 거주했던 곳임을 밝혔다. ..

에세이 한 편 2024.02.26

순수하고 맑은 사람, 권달웅/ 조창환

순수하고 맑은 사람, 권달웅 조창환 누군가 내 주변에서 시인다운 시인 한 사람을 찾아 말해보라 했을 때, 나는 대뜸 권달웅 시인이라고 답했다. 그는 시 쓰고 시 읽은 일 외의 다른 일상 잡사에는 무신경하다. 그는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했고, 직장에서 은퇴한 지금은 서울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가끔씩 기르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일 외엔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는 문핟 단체의 대표를 맡거나 적극 참여하여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내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향이 경북 봉화에서 나고 자라 경북 안동에서 고교를 졸업하였다. 한양대학교 재학 시에는 박목월 시인에게 촉망받던 문학 지망생이었고, 시인이 된 후에는 한눈팔지 않고 순수서정시에만 몰두하였다. 몇 해 전 발간한 시집 제목이 『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

에세이 한 편 2024.02.25

내 눈을 빛나게 한 신예 시인, 나지환/ 정숙자

내 눈을 빛나게 한 신예 시인, 나지환 정숙자 날이 갈수록 우체함에 꽂히는 책들이 많아진다. 잡지며 시집과 평론집, 산문집 등등 21세기의 새로운 문예부흥기가 도래했는가 싶기도 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므로 보내오는 책들을 모두 읽으려 노력하지만, 하루 24시간으로는 밤잠을 줄여도 역부족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장마철이면 홍수洪水에 건수乾水가 들어 마실 물이 귀해지듯이 정작 감동적이거나 양질의 자극을 선사하는 시詩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기. 『계간 파란』 2023-봄호에서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나지환‘의 「책등을 펼친 나비」를 보았다. 가파른 이론들이 섬세한 필치로 허점 없이 수렴되어 있었다. 아! 하고는···. 이 시인이 앞으로 써낼 글들이 궁금하고 또 기..

에세이 한 편 2024.02.25

시의 길을 함께 걸어온 벗이자 품 넓은 선배/ 박완호

시의 길을 함께 걸어온 벗이자 품 넓은 선배 박완호 김정수 시인은 오랫동안 시의 길을 함께 걸어온 벗이자 품 넓은 선배이다. 남다른 언어 조립공의 기질을 타고난 그는 처음 만난 이십 대 초반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느 길이든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샛길로 빠지는 법 없이, 고집 세고 뚝심 있는 성품이 돋보이는 시인의 면모를 꾸준히 보여주었다. 그렇게 사십여 년의 세월 동안 한눈을 팔지 않고 우직스럽게 자기의 길을 찾아 걸으며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내공은 최근 들어 놀라운 성취의 경지를 유감없이 펼쳐 보이는 중이다. 성실한 시 쓰기를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작품 발표를 기본으로 수년째 매주 일간지에 연재하는 시 읽기 및 월간지의 시집 읽기 코너, 다양한 시집의 해설 및 여러 문학지에 게재해온 시평 등 웬..

에세이 한 편 2024.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