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교육법 이혜선 교육열 높고 진보적인 시골 선비 아버지는 종손으로 태어나서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무거운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평생동안 선산을 떠나지 못하고, 청운의 뜻을 펴지 못하신 채 고향이라는 늪 속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 이무기이셨다. 함안 군청으로, 마산 시청으로 공무원이 되어 떠나 있던 것도 잠깐이고,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옥열리 무근절의 대대로 내려오는 선영과 집이 안 잊혀 그예 돌아와 파묻히고 마셨다. 통 말씀을 안 하셨으니, 일제 식민지 아래서의 공무원 생활이, 굽힐 줄 모르고 아부를 모르는 성격에 맞지 않은 것도 한 이유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서당에서 익힌 한학漢學과 신학문이 조화되어, 고루한 유교적 가풍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진보적인 사고를 이해하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