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이판사판문인(理判事判文人)의 꽃나무 그늘/ 김홍은

검지 정숙자 2024. 4. 11. 03:05

<에세이 한 편>

 

    이판사판문인理判事判文人의 꽃나무 그늘

 

     김홍은/ 수필가

 

 

  이판사판문인理判事判文人

  문학에도 이판사판문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가 글은 안 쓰고 문학의 길을 선도하는 인도작가引導作家의 역할만 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소재를 찾아서 서론, 본론, 결론을 설명하다 보면 결국은 내가 쓰고자 하였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쓰고 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남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다운 작가를 배출하지 못함에 늘 욕심만 앞세우고 채찍을 하지만 좋은 작품 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임에 고민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수강신청을 하고 작가의 길을 걷는 수필가가 좋은 수필을 발표하지 못하면 자신이라도 문단에 좋은 글을 써야 하는데, 못 씀에 한탄뿐입니다.

  그동안 각 문학지에 신작수필의 서평을 요청에 의해 잘하든 못하든 써오다가, 이제서 겨우 용기를 내어 지난해는 평론 신인상 작품 응모도 하였습니다.

  예전에 어른들 말씀에 나나니벌이 뽕나무벌레를 물어다 놓고, '나 닮아라 나 닮아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내가 그 짝이 되어 있는 셈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이지만, 나나니벌이 벌레들을 물어다 놓고 나를 닮으라는 노력을 들여 자신과 닮은 나나니벌을 키워내고 있습니다. 나의 수필교육도 이와 유사하게 결국은 나나니벌같이 '나 닮아라, 나 닮아라' 하듯이 청출어람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수필은 글과 사람이 같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솔선하여 행동으로 옮기고, 문학으로 지역의 문화를 높이자는 뜻에서 문의 향교를 10여 년간 관리하며, 우리 문화를 드높이려 노력도 해보았습니다. 

 

  수필 소재를 찾아서

  수필은 경험을 바탕에 둔 참신성 있는 창작의 감성으로 표현하는 것을 원합니다. 새로움을 발견하고, 자연과학의 생물 지식을 소재에 둡니다. 색다른 시야로 사물의 변화과정을 바라보며 새삼 신비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조림학, 조경학을 강의함에 씨앗에서부터 자연의 탄생, 발아, 성장, 변화 등 다양한 시각의 느낌으로 향기로운 마음을 정감있게 조명하려, 친화감으로 자연의 묘사를 시도합니다.

  나무의 식별이나 형태를 보다 감각적인 경험의 문학을 창의성과 상상력으로 식물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소홀히 여기고 있는 우리의 문화를 다시금 지키려 향교에서 머슴살이도 10여 년간 고행도 해 보고, 체험을 통하여 선현들의 삶을 흥미롭게 감지하며 수심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가능한 신변잡기의 수필을 벗어나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동안 익히며 공부하였던 자연을 지정의로 독자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40년간을 나무와 함께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며 인생 산수傘壽의 고개에서 침엽수의 비밀, 암꽃과 수꽃의 모양, 종자의 생명, 정자의 날개, 침엽수의 과육 열매를 살펴보았습니다.배주胚珠와 배병胚柄 형태를 사진으로 보여주며 침엽수는 어떻게 결혼을 하나 그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잣나무 열매의 형성과정과 배아기胚芽期, 잣나무 배꼽, 잣나무의 뿌리를 생태학적으로 느끼며 어설픈마 수필로 이끌려고 고민을 해왔습니다.

  침엽수 은 향기도 없을 뿐 아니라 암꽃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침엽수를 찾아다니며 소재로 삼았습니다. 교단에서 30년 넘도록 조림학, 조경학을 강의했으나 반복에 불과했다며 자연에 관한 전공의 기초이론은 큰 변화가 없어 교과서에 의존할 뿐이었음을 느꼈습니다. 2007년 정년 후, 다시 돌아보니 겉만 가르쳤음을 깨달았습니다. 학자가 저술한 책만 읽고 이야기할 줄만 알았지 목수처럼 그 근본적인 깊이의 내용은 알지 못하고 강의해 왔음을 뒤늦게 뉘우쳤지요. 정년 후 8년째 침엽수에 대한 암꽃, 수꽃을 관찰하며 종자를 따서 파종하고 발아하는 과정을 다시 살피며, 자연의 기초를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발아된 새잎의 수가 신기했습니다. 모수母樹의 잎을 보면, 전나무는 1개, 소나무는 2개, 리기다소나무는 3개, 잣나무는 5개임에 그렇게 나오겠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씨앗을 파종해서 나온 잎을 세어보면 4개, 5개, 8개, 13개의 이파리가 나왔음에 상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이제까지 교과서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내용이었습니다. 이들을 새로운 수필 소재로 관심에 두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개비자나무에 푹 빠져 있습니다. 80여 년 자란 개비자 암나무는 수나무의 꽃가루를 받아야 수정授精이 이루어져 열매를 맺을 텐데 안타까웠습니다. 개비자나무 씨를 심은 지 5년 만에 수나무가 꽃을 피워, 암나무 옆에 옮겨다 심었더니 지난해 650개의 열매를 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개비자나무 자서전』을 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수필나무꽃 그늘에서

  전공을 기초로 한 소재의 작품들도, 지식을 바탕으로 한 수필은 새로움의 창작성이 부족하였습니다. 이를 탈피하려고 고심을 하며, 그럭저럭 쓴 '테마수필'로 『나무가 부르는 노래』가 되었고, 백여 편에 이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편을 더 쓰게 될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15년간 편집 발행해 온 『푸른솔 문학』(계간)지가 지난해로 60호를 펴냈습니다. 역시 이 문학지도 앞으로 몇 해나 더 지속하여 발간될지가 의문입니다.

  그동안 수필의 나무를 심어 오면서, 매 학기 리포트로 받은 수강생의 작품집이 지난해로 60호가 되어 『수필 첫걸음』의 가제를 두고 편집 중입니다. 이제는 수필가로서의 욕심도 서서히 내려놓는 중입니다. ▩ (p.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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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문학』 2024-1월(659)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 무엇을 쓰고 있나> 에서

  * 김홍은/ 1941년 충북 문의 출생, 1983년『월간문학』으로 수필 부문 등단, 저서『나무가 부르는 노래』『꽃이야기』『나무이야기』『시집 가는 개비자나무』외 4권, 공저『저 바람 속에 불꽃이』외 8권, 편찬『충북예총50년사』외 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