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속의 시 1편>
푸치니가 토스카니니에게
김추인
크리스마스 날 FM에서 엿들은
아니리 한 대목이었다
동글동글 굴러가는 목소리의
푸치니와 토스카니니는 친구였어요 그땐 젤 좋아하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빵을 선물하는 것이 풍습이었죠
무의식 중에 푸치니는 토스카니니에게 빵 선물을 보낸 것이 생각났는데 곰곰 생각하니 다툰 기억이 났어요
혹시 용서를 비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돌려보내진 않을까 전전긍긍 생각다 못해 전보를 쳤지요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보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랬더니 답신 오기를
크리스마스 빵 잘못 알고 먹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푸치니와 토스카니니를 들으며
창밖의 눈발처럼 희죽희죽 웃었다
나도 그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전문-
▶49일간의 남미 · 아프리카 배낭 기행산문집 『그러니까 사막이다』/ 에필로그(부분)_김추인/ 시인
나의 유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나는 야무진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어쩌다 서점 곁을 지나가기라도 하면 돈도 없으면서 쪼맨한 아이가 책방에 들어와 기웃거리며 한 바퀴 책방 안을 훑고는 꿈꾸듯 중얼대는 거였으니.
"내도 서점 점원이 될 끼다. 그카고 쩌기 예쁜 언니맨치로 맬맬 책 읽을 끼다. 여, 있는 책은 몽땅 다··· 꽁짜 아이가!"
책에 대한, 유난한 기호 성향은 백수 선비시던 아버지의 내림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선비께선 당신 앉으신 방석 왼 켠은 울긋불긋 밑줄 친 신문들이 각을 세워 반듯하게 쌓여있고 오른 켠엔 낡고 해진 신구 서적들 쌓인 아래 아버진 누렇게 바랜 백과사전에 꼬불꼬불 밑줄을 치시며 엎드려 계시곤 했었다.
이런 행태는 당대가 아니라 사화士禍같은 어지러운 시절, 벼슬을 놓은 선조들이 지리산 백전栢田면(잣밭골)로 숨어들어 만고에 일이라곤 몇 대고 마을의 가난한 훈장 노릇 말고는 할 일이 없었으니. 산골에서 서당공부를 할 학동들 두엇 있다손 쳐도 그 월사금이라는 게 겉보리 뎃박이나 계란 몇 개 정도니. 산 밑 밭뙈기라도 갈아먹지 않으면 풀칠하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略···)
대대손손 책 사랑은 문중 DNA에 새겨져 내려왔음이 분명하다. 우선 나를 두고 봐도 주방 살림 대신 온 집안에 책과 꽃들로 채워져 있다하겠으니··· 이는 평생 꽃을 가꾸시던 아버지의 피와 범생이던 오빠의 영향이지 싶다. (p. 시 215-216/ 론 217-1219 (略) 2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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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추인_배낭 기행산문집 『그러니까 사막이다』 2024.4. 9. <서정시학> 펴냄
* 김추인/ 경남 함양 출생, 1986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모든 하루는 낯설다』『프렌치키스의 암호』『행성의 아이들』『오브제를 사랑한』『해일』『전갈의 땅』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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