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순수하고 맑은 사람, 권달웅
조창환
누군가 내 주변에서 시인다운 시인 한 사람을 찾아 말해보라 했을 때, 나는 대뜸 권달웅 시인이라고 답했다. 그는 시 쓰고 시 읽은 일 외의 다른 일상 잡사에는 무신경하다. 그는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했고, 직장에서 은퇴한 지금은 서울 시내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가끔씩 기르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일 외엔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는 문핟 단체의 대표를 맡거나 적극 참여하여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내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향이 경북 봉화에서 나고 자라 경북 안동에서 고교를 졸업하였다. 한양대학교 재학 시에는 박목월 시인에게 촉망받던 문학 지망생이었고, 시인이 된 후에는 한눈팔지 않고 순수서정시에만 몰두하였다. 몇 해 전 발간한 시집 제목이 『휘어진 낮달과 낫과 푸른 산등성이』였는데, 나는 이 제목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휘어진 낫"이 아니라"휘어진 낮달"이라 한 것이 재미있었다. 자연을 소재로 한 그의 시는 간결한 언어와 투명한 서정성을 구현하고 있다.
그는 시만 순수한 것이 아니라 인간됨도 순수하다. 너무 순수해서 대중 앞에 서서 연설하려면 손바닥에 땀부터 난다고 한다. 그는 너무 맑아서 현실적 이익을 위해 아첨하고 몸 굽히는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고 불쾌한 내색을 하거니 시비를 가린다. 그는 살아가면서 맺힌 일 있으면 먼저 풀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몸 낮추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옷깃을 여민다. 눌린 것, 맺힌 것, 분한 것 폭발하기 전에 부드럽게 다독거리고 쓰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 (p.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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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계간 『상징학 연구소』 2024-봄(13)호 <사랑하는 사람들> 에서
* 조창환/ 1973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나비와 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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