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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의 램프/ 윤석산(尹錫山)

바다 속의 램프      윤석산尹錫山    출렁일수록 바다는  頑强한 팔뚝 안에 갇혀버린다.  안개와 무덤, 그런 것 속으로  우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溺死할 수 없는 꿈을 부켜 안고  사내들은 떠나간다.  밤에도 늘 깨어 있는 바다.  燒酒와 불빛 속에 우리는 소멸해 가고,  물안개를 퍼내는  화물선의 눈은 붉게 취해버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워진다.  젖은 장갑과 건포도뿐인 세상은,  누구도 램프를 밝힐 순 없다.  바다 기슭으로 파도의 푸른 욕망은 아나고  밀물에 묻혀 헤매는  게의 다리는 어둠을 썰어낸다.  어둠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워지는가  우리는 모두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웠다.  世界는 가장 황량한 바다.  ..

편지/ 윤석산(尹錫山)

편지     윤석산尹錫山    오뉴월 꽃그늘이 드리우는 마당으로 우체부는 산골 조카의 편지를 놓고 갔구나. 바람 한 점 흘리지 않고 꽃씨를 떨구듯.   편지는 활짝 종이 등을 밝히며 서로를 파란 가슴을 맞대고 정겨운 사연을 속삭이고 있구나   찬연한 속삭임은 온 마당 가득한데, 꽃씨를 틔우듯 흰깁을 뜯으면 샘재봉 골짜기에 산딸기 익어가듯 조카는 예쁜 이야길 익혀 놨을까.   모두 흰 봉투에 숨결을 모두우며 꽃내음 흐르는 오뉴월 마당으로  「석 산 인아 저 씨 께」  아, 조카가 막 기어다니는 글씨 속에서 예쁜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구나.    -전문(p. 22)/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 블로그 註/ 깁: 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로 바탕을 조금 거칠게 짠 비단(Daum 검색)  ..

동시 01:59:30

이찬_"길은 가면 뒤에 있다"(발췌)/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零下 十三度  零下 二十度 地上에  온몸을 뿌리 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零下에서  零上으로 零上 五度 零上 十三度 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