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탄착점/ 제리코 브라운 : 양균원 역

검지 정숙자 2020. 10. 7. 03:35

 

 

    탄착점(Bullet Points)

 

    제리코 브라운/ 양균원 역

 

 

  내 머리통에 스스로 총을 쏘지는

  않을 거야, 내 등짝에 스스로 총을 쏘지는

  않을 테야, 쓰레기 봉지로 목을 매다는 일 따위는

  없을 거야, 혹여 그리한다면,

  네게 약속하건대, 수갑 채워진 경찰 호송차나

  읍내 감방에서 그 짓을 하진 않을 거야

  집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지나가는 수밖에 없으므로 나는 그 이름을

  그저 알고 있을 뿐이지, 그래, 난 위험해질 수 있겠지, 

  하지만 네게 약속하거니와 내겐 믿는 데가 있어, 

  내 집 마룻장 밑에 살고 있는 구더기들이

  어떤 시체에게라도 꼭 행해야 할

  그 일을 행하리라고, 내가 국법을 관리하는 자에게

  보내는 신뢰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거라고, 믿고 있지,

  그리하여 신의 지도를 받는 자가 하듯이

  내 두 눈을 감겨 주거나, 너무 깨끗해서

  어머니가 내 몸을 감싸는 데 사용할 수도 있을 천으로

  나를 덮어 주겠지. 내가 나를 죽일 때는, 대다수 미국인이

  행하는 대로 똑같이 그리할 거야,

  네게 약속할게, 흡연으로 죽거나,

  목구멍에 고깃덩이가 걸려 질식하거나,

  우리가 계속 최악이라고 부르게 되는

  이 겨울들 중 어느 한 철에

  빈털터리가 되어 얼어 죽는 거야,

  약속하거니와 언젠가 경찰 주변 어디에서든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네가 듣게 된다면

  그 경찰이 나를 죽인 거야. 그가 우리에게서

  나를 빼앗고 내 시체를 뒤에 남긴 거지, 그 시신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르침이 무엇이든지 간에,

  도시 전체가 한 어머니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데 지불할 수 있는

  합의금보다 더 큰 것이지

  내 뇌의 주름들 사이에서 끄집어낸

  새로 산 총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지.

     -전문 (p. 295-296)

 

 

  우리가 물려받은 폭력 : 제리코 브라운의 전승傳承(발췌)_ 양균원/ 시인

  2020년도 시 부문 퓰리처상의 영예는 아프리카계 제리코 브라운(Jericho Brown)에게 돌아갔다. 수상집 『전승傳承』(The Tradition)은 그의 세 번째 시집으로서 전년도에 출판되어 전미도서상(National Book Award) 최종심에 오른 적이 있다. 『전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적 제재는 폭력이다. 미국 사회에 뿌리 깊이 차지하고 있는 인종차별의 문제가 시집 곳곳에서 전면적으로 다뤄진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폭력은 시집의 제호가 알려주듯 수세기에 걸쳐 전승되어온 것으로서 수면 아래 사라졌다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고질적 성질을 띠고 있다. 여기에 완역하여 소개하는 네 편의 시에서 브라운은 종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그의 시 「탄착점」(Bullet Points)은 최근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백인 경찰의 불법적 목 누르기에 의해 사망한 후 여러 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공유되었다고 한다. 「탄착점」이 이렇듯 흑인인권운동의 촉매가 되는 것은 그 시의 상황이 오늘의 플로이드 사건과 다르지 않고 그렇게 유사한 상황이 그 이전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일어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p.286-287)

 

  시의 제목 "Bullet Points"주요항목이나 강조사항들 앞자리에 놓이는 글머리 기호를 뜻한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두 단어 "Bullet"과 "Points" 각각의 일차적 의미를 연결하여 총알이 도달하는 지점들을 뜻하는 것으로 번역한다.

  화자는 처음부터 다소 흥분한 자의 말투를 구사한다. 아무래도 최근에 일어난 자살 혹은 살인 사건들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우선 죽지 않는 것이다. 살아남는 게 목표가 될 만큼 모종의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렇지만 "혹여" 죽더라도 평범하게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청자에게 약속까지 해댄다. "수갑 채워진 경찰 호송차"나 "읍내 감방"처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종종 내몰리게 되는 예외적 장소들이 아니라 대다수 미국인처럼 집에서 죽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는 그런 죽음의 위험 속에 불가피하게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는 "집에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그곳을 지나가는 수밖에 없으므로" 그 위험한 어딘가를 매일 뚫고 지나가야 하는 처지에 있다. 화자는 "그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할 뿐 그곳이 어디라고 직접 밝히지는 않는다. 시 원문에서 "the name of" 이후에 놓여야 할 목적어가 공백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곳이 폭력이 상존하는 빈민가인지, 백인 경찰의 불법적 폭력이 묵인되는 사회인지, 혹은 개인이 담당하기 어려운 모든 폭력의 현장인지 분명하지 않게 일부러 비워둔 듯하다.

  화자는 자신의 죽음을 "국법을 관리하는 자"보다 구더기들에게 맡기려고 한다. "마룻장 밑에 살고 있는 구더기들"은 "내 두 눈을 감겨 주거나" 어머니가 날 위해 사용할 법한 깨끗한 수의처럼 하얗게 내 시신을 덮어줄 것이다. 시신에 굼실대는 구더기들에게 화자가 신뢰를 보내는 태도에는 국법에 대한 불신과 함께 자학적 냉소마저 감지된다. 그에게 구더기들은 공평하다. 그는 구더기들이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어떤 시체에게라도 꼭 행해야 할. 그 일을 행하리라고" 믿는다. 

  화자가 원하는 죽음은 평범한 미국인의 죽음이다. 그에게 평범한 죽음은, 그러니까 "대다수 미국인"이 겪는 죽음은 "흡연으로 죽거나,/ 목구멍에 고깃덩이가 걸려 질식하거나,/ ··· / 빈털터리가 되어 얼어 죽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을 택하면서 그가 그토록 간절히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국가 공권력의 행사자인 경찰에 의한 죽음이다. 경찰의 불법적 폭력이 일으키는 사회적 파장은 만만치 않다. 정의를 요구하는 사회적 소요가 일어나고 법이 개정되고 정치인의 약속이 난무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얻은 "가르침이 무엇이든지 간에" 한 인간의 억울한 죽음은 적절히 애도될 수 없다. 왜냐하면 "도시 전체가 한 어머니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데 지불할 수 있는/ 합의금"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상처의 뿌리를 제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뒤에 남겨진 그 시신은 "내 뇌의 주름들 사이에서 끄집어낸/ 새로 산 총알보다 더 아름다은 것"이기 때문이다. (p.298-299)

 

 

 

   ▣ 인용문헌/ Jericho Brown. The Tradition. Port Townsend: Copper Canyon Press, 2019.

 

   * 블로그주: 위의 시 「탄착점」 원문은 『포지션』 2020-가을호, 296~298쪽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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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SITION 포지션』 2020-가을호 <POSITION 9/ 해외 현대시 읽기>에서 
   * 양균원/ 1981년 ⟪광주일보⟫ & 2004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시집 『허공에 줄을 긋다』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집밥의 왕자』, 연구서 『1990년대 미국시의 경향』 『욕망의 고삐를 늦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