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새를 기억하는 오후
한선자
미동도 없이 화면을 본다
동생을 살려달라는 기도가 푸르다
여자는 추모편지를 읽다 말고 단상을 내리친다
순간, 오래전에 죽은 새 한 마리를 만진다
손바닥이 축축해진다
날개가 돋기 시작한 새를 놓쳐버린 어미는 죽은 새를 불 속에 던져 넣고 먼 곳을 헤맸다
어미 새도 타버릴까 무서웠다
그 후로 오랫동안 울음소리마다 나뭇잎들이 떨어졌다
도시에 와서도 가끔 새가 울었지만 누구도 죽은 새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어둡고 축축한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단단하게 죽은 새 한 마리를 오래도록 쓰다듬는다
무등을 타고 놀던 어린 새가 화면 가득 날아다닌다
푸른 기도 속으로 떠난 새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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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2019-겨울호 <신작시>에서
* 한선자/ 2003년 시집『내 작은 섬까지 그가 왔다』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울어라 실컷 울어라』『불발된 연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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