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병률_ 세상의 맥박에서 살내음을...(발췌)/ 홍에 애국 : 장옥관

검지 정숙자 2019. 11. 25. 00:10

 

 

    홍에 애국

 

    장옥관

 

 

  보리 순이 올라오는 계절이다 파릇한 고요 속에서 머문다 바람이 와 보리를 건드리고 간다

  움찔움찔 보리 순이 자지러딘다

 

  홍어는 비뇨기가 없다고 한다 바닷물보다 더 짜디짠

  체액으로 몸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천적이 내려올 수 없는 수압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어부는 홍어를 잿더미에 던져놓는데, 오줌은 그 속에서 적당히 삭혀혀져 몸속 고루고루 퍼져나간다

 

  그 홍어의 창자를 빼내 국을 끓인 게

  애국이다 진한 냄새와 기름기를 보리 순으로 덮어 끓인 게

  애국이다 애국을 먹어야 하는

  삶이 있다 밤새 술에 뒤척인 몸, 진한 오줌 누는 몸 달래주는 애국이다

 

  홍어를 굳이 홍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썩어 문드러진 창자 토막 내 뜨겁게 불며 먹는 음식

  곁들이는 보리 순이다 보리 순이 파릇하게 올라오는 계절이다 애를 끓이는 밤이다 봄밤이다

    -전문-

 

 

   ▶ 세상의 맥박에서 살내음을 도려내는 시인(발췌)_ 이병률/ 시인

   입가로부터 흥분이 차오른 시. 삭힌 홍어는 가장 충격적이 맛 가운데 하나다. 홍어를 먹느니 차라리 고추장으로 배를 채우겠다던 외국인 친구가 생각난다. 「홍에 애국」에는 홍어 냄새가 진동하면서 읽는 사람들의 '애를 끓'인다./ 홍어는 홍어라 부는 것보다 '홍에'라고 부를 때 정말 홍어같다. 가슴에 파문을 일으켜서다. 물론 먹어본 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언제쯤 모든 인류는 홍어의 맛을 보고 '홍에'라는 발음과 정서에 대해 동의를 할 수 있을까./ 시인은 냄새에 사무치지 않는다. 발을 빠뜨려 허우적대지 않는다. '홍어의 창자를 빼내 국을 끓인 애국' 앞에서 홧홧해지는 것이 아니라 관조한다. 번역을 하더라도 전달이 쉽지 않을 이 시는 '홍어를 홍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문장 때문에라도 더 그러하다.(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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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산맥』2019-겨울호 <시산맥이 찾아가는 시인/ 신작시/ 작품론> 中

  * 장옥관/ 1987년『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황금 연속』『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 이병률/ 1995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바람의 사생왈』『바다는 잘 있습니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