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조창규_ 만날 수 없는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발췌)/ 만날 수 없는 사람 : 유병록

검지 정숙자 2019. 11. 7. 02:11

 

 

    만날 수 없는 사람

 

    유병록

 

 

  만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당신을 미워하므로

  사과한다고 받아줄 마음도 없지만

  그들은 사과조차 하지 않았고

 

  그러나 우리

  부디 살아서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혼자 다짐하다가

 

  만나고  싶은데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연락을 하면

  전화를 받지 않거나

  언제 한번 보자는 이야기만 하고 감감무소식

 

  어쩌면

  그들에게는 지독하게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나일 수도 있겠구나

 

  내가 그동안 지은 죄를 떠올려본다

  그 목록이 길다

 

  우리

  부디 살아서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나는 사과하지 않았고

  사과한다고 해도 받아줄 리가 없으니

   -전문, 『현대시』 2019-9월호

 

 

  ▶ 만날 수 없는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발췌)/ 조창규 

  당신과 나 사이에 엉킨 관계를 풀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나에게 그만큼의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이 말은 당신이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믿음은 신뢰를 바탕으로 쌓이는 것인데, 신뢰가 가지 않는 상대에게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사과는 상대방의 용납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용기가 나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인데, 그 용납이 불확실할 때 믿음도 사라진다./ 우리는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삭제하거나, 카톡을 차단하는 등, 많은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정리하며 살아간다. 일일이 소모적인 감정 대응을 할 만큼 우리는 여유롭지도 않고, 인격적으로 성자가 아니다. 그런데 나도 누군가에게는 "지독하게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상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된 것이다. (p.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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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2019-10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추천작|작품론> 에서

  * 조창규/ 2015년《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