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터널이 자꾸 생겨나고 있다/ 안명옥

검지 정숙자 2019. 11. 5. 02:44

 

 

    터널이 자꾸 생겨나고 있다

 

    안명옥

 

 

  세상에서 가장 긴 지중해의 터널을 지난다

  즐겨 부르던 슬픈 노래의 가사를

  몇 번이나 되감기하면서

  나는 풍경이 없는 이 터널을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이 결혼생활이 답답해

  그냥 싫어.

  이건 폭력 같아

  길고 긴 터널 저쪽으로 진입한 친구가 보내온 문자

  압력밥솥 속에서 끓는 자음과 모음들

 

  자소서만도 수백 장을 썼다는 문송* 제자는

  스펙 쌓느라 졸업도 미루었고 연애도 포기하더니

  다시 결혼까지 포기하며 혼자 살 거라 한다

  법도 제도도 터널의 또 다른 이름

  자고 나면 세상의 길엔 자꾸만 터널이 생겨나더라고

 

  쇼핑하거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공허함을 채우고

  네일아트를 받거나 두 시간 동네를 걸으며

  동종요법의 터널을 견디는 여자

  누군가는 터널을 파고 또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견딜 수 있는 터널은

  끝이 있고 빛이 있다는 것

  지나간다는 것인데

  어둠 속에서 미소가 없는 사람들

  터널을 만드는 수많은 채널 같은 터널

 

  지금 누군가는 터널을 향해 달려 들어가고

  누군가는 또 다른 터널을 향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전문-

 

   * 문과 취업이 어려워지자 만들어진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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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2019-가을호 <이 계절의 시>에서

  * 안명옥/ 200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칼』『달콤한 호흡』등, 서사시집 『소서노』『나, 진성은 신라의 여왕이다』, 창작동화『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금방울전』『파한집과 보한집』, 역사동화『고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