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이 자꾸 생겨나고 있다
안명옥
세상에서 가장 긴 지중해의 터널을 지난다
즐겨 부르던 슬픈 노래의 가사를
몇 번이나 되감기하면서
나는 풍경이 없는 이 터널을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이 결혼생활이 답답해
그냥 싫어.
이건 폭력 같아
길고 긴 터널 저쪽으로 진입한 친구가 보내온 문자
압력밥솥 속에서 끓는 자음과 모음들
자소서만도 수백 장을 썼다는 문송* 제자는
스펙 쌓느라 졸업도 미루었고 연애도 포기하더니
다시 결혼까지 포기하며 혼자 살 거라 한다
법도 제도도 터널의 또 다른 이름
자고 나면 세상의 길엔 자꾸만 터널이 생겨나더라고
쇼핑하거나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공허함을 채우고
네일아트를 받거나 두 시간 동네를 걸으며
동종요법의 터널을 견디는 여자
누군가는 터널을 파고 또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견딜 수 있는 터널은
끝이 있고 빛이 있다는 것
지나간다는 것인데
어둠 속에서 미소가 없는 사람들
터널을 만드는 수많은 채널 같은 터널
지금 누군가는 터널을 향해 달려 들어가고
누군가는 또 다른 터널을 향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전문-
* 문과 취업이 어려워지자 만들어진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뜻의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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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시학』2019-가을호 <이 계절의 시>에서
* 안명옥/ 200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칼』『달콤한 호흡』등, 서사시집 『소서노』『나, 진성은 신라의 여왕이다』, 창작동화『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금방울전』『파한집과 보한집』, 역사동화『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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