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현미경 외 1편/ 김조민

검지 정숙자 2019. 11. 7. 21:02

 

 

    현미경 외 1편

 

    김조민

 

 

  나는 맨눈으로 볼 수 없는가요?

 

  내가 연구하는 것들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박테리아조차도 현미경 속에서

  다른 미생물과 구분되는 긴 끈을 흔들며

  커다란 머리와 꼬리를 뽐내고 있습니다

 

  눈을 뜨면 현미경은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안경을 벗고 눈을 감습니다

  연구실 밖으로,

  소요산행 역방향으로

  고향집 논두렁에 내다버린 장롱 너머로

  내 걸음이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을 감은 내가

  현미경 아래를 달리고 있습니다

 

  나는 우주 속 미생물인가요?

  손에 든 비커는 지구입니까?

 

  현미경이 슬라이드에 담긴 미생물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들여다보는 것인지요?

 

  온데간데없는 나

  한 줄기 어둠이 등 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도

  나는 눈을 뜨지 않습니다

    -전문-

 

 

   --------

     부자

 

 

  내가 바라는

  그 길에 이르기 위해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할 때

 

  말 배우기

  아들이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

 

  그렇게

  한여름 오후가

  이유도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전문-

 

 

   --------------

  *『다층』 2019-가을호 <다층시단>에서

  * 김조민/ 2013년『서정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