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경 외 1편
김조민
나는 맨눈으로 볼 수 없는가요?
내가 연구하는 것들은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박테리아조차도 현미경 속에서
다른 미생물과 구분되는 긴 끈을 흔들며
커다란 머리와 꼬리를 뽐내고 있습니다
눈을 뜨면 현미경은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안경을 벗고 눈을 감습니다
연구실 밖으로,
소요산행 역방향으로
고향집 논두렁에 내다버린 장롱 너머로
내 걸음이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눈을 감은 내가
현미경 아래를 달리고 있습니다
나는 우주 속 미생물인가요?
손에 든 비커는 지구입니까?
현미경이 슬라이드에 담긴 미생물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들여다보는 것인지요?
온데간데없는 나
한 줄기 어둠이 등 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눈을 뜨고도
나는 눈을 뜨지 않습니다
-전문-
--------
부자
내가 바라는
그 길에 이르기 위해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할 때
말 배우기
아들이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
그렇게
한여름 오후가
이유도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전문-
--------------
*『다층』 2019-가을호 <다층시단>에서
* 김조민/ 2013년『서정시학』으로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묘/ 장석원 (0) | 2019.11.09 |
---|---|
전언/ 전영미 (0) | 2019.11.09 |
www.koreapoem.co.kr / news : 강윤순 시인 별세 (0) | 2019.11.07 |
조창규_ 만날 수 없는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발췌)/ 만날 수 없는 사람 : 유병록 (0) | 2019.11.07 |
그림자 마을/ 김인숙 (0) | 2019.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