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림자 마을/ 김인숙

검지 정숙자 2019. 11. 5. 02:59

 

    그림자 마을

 

    김인숙

 

 

  굴뚝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밤하늘의 한계점까지 날아올랐던 그림자들은

  아침이 되면 깊은 지하의 숲을 향해 내려간다

 

  처음 마을에 온 사람들은

  그림자들의 느릿느릿한 걸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한 가지 색깔의 그림자를 강요당한다

  밤의 숲, 그때서야 별이 멸종한 하늘을 받아들인다

 

  멧새가 검은 햇살을 물어 날라 지상의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은 하나 둘 짐을 싸고 떠났다

  기침 속마다 검은 그림자가 가득 찬 사람들,

  소문은 저탄더미처럼 쌓여 있고

  무뚝뚝한 화차가 철근을 날랐다

  검은 잎들은 더 이상 봄의 상징이 되지 못했다

  가로수 위로 검은 때가 낀 한낮의 해가 떨어지고

  긴 죽지를 펼친 구름들이 마을을 덮으면

  숲에선 검은 까마귀들이 날아올랐다

 

  까마귀의 밤,

  빈집들엔

  검은 그림자들이 쿨럭거리며 산다

  서서히 마을이 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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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시학』2019-가을호 <열린시학이 주목하는 시인>에서

  * 김인숙/ 2012년 『현대시학』으로 시 부문 & 2017년 『시와세계』로 평론 부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