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새의 문장/ 김왕노

검지 정숙자 2019. 9. 13. 01:29

 

    새의 문장

 

    김왕노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파도가 다 지우지 못한

  저 발자국들 새가 새기다가 날 저물고 추워지자

  그대로 두고  떠난 미완의 문장

  푸른 하늘을 꿈꾼다고 뼈마저 텅 비웠으므로

  깃털마저 저 바람을 닮아 가벼우므로

  제 몸무게로 문자 몇 개 새긴다는 것이

  먹이를 찾다가 저물어가면서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지만

  어쩌다 남겨진 새들의 문장이 먼 훗날

  누군가의 발아래서 화석으로 빛날 것이다.

  지금의 별과 세상의 비밀을 담고 있는

  새들의 문장이 다시 오늘 같이

  푸르고 아득한 하늘을 열어젖힌다는 것을

 

  온몸으로 써가는 새의 문장이라면

  그것은 또 얼마나 오래 갈 새들의 아름다운 역사인가.

  끝내 지워지지 않고 남을 문장을 위해

  몸피를 불리느라

  저녁 하늘을 자욱이 뒤덮은 새들의 군무

  새가 된 어머니 이옥남 아버지 김종윤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 두영이 후남이 그리고 전태일 체게바라.

 

   ---------------

  *『시선2019-가을호 <신작 소시집> 에서

  * 김왕노/ 1957년 포항 출생, 1992년 매일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 새를 만드는 시인』『그리운 파란만장』등, 시선집『리아스식 사랑』등, 디카시집『게릴라』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커피/ 이유선  (0) 2019.09.14
백송(白松)을 바라보며/ 정호승  (0) 2019.09.13
종이 문패/ 정솔  (0) 2019.09.12
봄, 절묘한/ 손옥자  (0) 2019.09.11
이슬 프로젝트-45/ 정숙자  (0) 2019.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