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문장
김왕노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파도가 다 지우지 못한
저 발자국들 새가 새기다가 날 저물고 추워지자
그대로 두고 떠난 미완의 문장
푸른 하늘을 꿈꾼다고 뼈마저 텅 비웠으므로
깃털마저 저 바람을 닮아 가벼우므로
제 몸무게로 문자 몇 개 새긴다는 것이
먹이를 찾다가 저물어가면서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지만
어쩌다 남겨진 새들의 문장이 먼 훗날
누군가의 발아래서 화석으로 빛날 것이다.
지금의 별과 세상의 비밀을 담고 있는
새들의 문장이 다시 오늘 같이
푸르고 아득한 하늘을 열어젖힌다는 것을
온몸으로 써가는 새의 문장이라면
그것은 또 얼마나 오래 갈 새들의 아름다운 역사인가.
끝내 지워지지 않고 남을 문장을 위해
몸피를 불리느라
저녁 하늘을 자욱이 뒤덮은 새들의 군무
새가 된 어머니 이옥남 아버지 김종윤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 두영이 후남이 그리고 전태일 체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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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19-가을호 <신작 소시집> 에서
* 김왕노/ 1957년 포항 출생, 1992년 매일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황금을 만드는 임금 새를 만드는 시인』『그리운 파란만장』등, 시선집『리아스식 사랑』등, 디카시집『게릴라』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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