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종이 문패/ 정솔

검지 정숙자 2019. 9. 12. 19:49

 

    종이 문패

 

    정솔

 

 

  혈관이 막혀 중심을 잃은 후에

  본인 이름으로 된 종이 문패 하나 걸었다

 

  요양 병동 2동 201호

  이곳을 친정이라 생각하라는 어머니

  저 문패를 달기 위해 90평생을 사신 어머니

  방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병실에서,

  종이 문패에서 약 냄새가 난다고 한다

 

  전등을 끄지 않는 방

  좀처럼 닫히지 않는 문을 여닫고 살려면

  60만 원을 내고

  종이 문패를 달아놓은 입실 기념으로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신다

 

  약 냄새를 싫어하셔서

  약 냄새 안 나는 곳으로 가시려는 어머니

  90평생 처음으로 본인 이름을 걸어놓자마자

  자동 폐기될 종이 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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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창작2019-가을호 <2000년대 시인/ 신작시> 에서

  * 정솔/ 2015년 『문학과창작』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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