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상』2016-4월호 / 연재|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문예사조 12회
탈구조주의
김성곤(金聖坤)/ 한국문학번역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1. 구조주의의 문제점
프랑스에서 시작된 탈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는 조금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과 인식을 같이 하는 문예사조로서, 현대문학이론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문학과 건축, 그리고 미술과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면, 탈구조주의는 학문적 비평이론으로서 현대 학계와 사상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조는 모두 문예창작과 문학비평, 그리고 문학해석과 문학수용의 최근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논랄 만큼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예컨대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 이론이나 푸코(MIchel Foucault)의 담론 이론, 또는 리오타르(Jean Francois Lyotard)의 대서사 · 소서사 이론이 절대적 진리를 부인하고, 중심과 주변의 자리바꿈을 인정하며, 사물의 경계를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 나아가 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자의 죽음' 이론이나 크리스테바(jular Kristeva)의 페미니즘 이론, 또는 자끄 라깡(Jacques lacan)의 심리분석 이론이나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차이 이론도 포스트모던 인식에 촉수를 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탈구조주의란 무엇이며, 왜 그렇게도 중요한 사조가 되었는가? 구조주의의 속성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이 비판하고 극복하려 했던 구조주의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구조주의는 '언어'를 모든 체계의 기본으로 상정하고, 개체의 특성보다는 그것들의 뒤에 숨어 있는 공통의 체계나 구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사조였다. 구조주의는 언어를 파롤과 랑그로 나누어, 개인의 발화인 '파롤'보다는 언어의 사회적 체계인 '랑그'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던 언어학자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이론에 근거해 시작되었다. 즉 구조주의는 언어 자체보다 언어를 연결해주는 사회적 '체계'와 언어 속에 감추어진 '심층구조'를 더 중요시한 문예사조였다.
이러한 생각과 태도는 언어뿐아니라, 문학이나 인류학이나 신화를 연구할 때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구조주의자들은 겉으로 드러난 표면보다는 그 근저에 숨어 있는 어떤 공통된 체계나 법칙, 또는 구조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예컨대 탈구조주의로 전향하기 전의 롤랑 바르트는 옷을 개인의 특성이 아닌 하나의 '의상체계'로 보았으며, 작가들의 글쓰기 또한 개인의 독창적 작업이 아니라 '언제나 이미 쓰여진' 문화나 사회체계 내에서의 공동 작업으로 보았다.
대표적인 구조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또한 원시부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원주민들의 개인적인 특성은 그 부족 전체의 문화적 구조와 체계 속에서 파악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초기의 토도로프(Tzvetan Todorov) 역시 자신이 '시학(Poetics)'이라고 부른 것의 탐색을 통해 문학의 일반적 문법과 구조를 찾아내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 토도로프가 탐정소설이나 《아라비안나이트》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그것들을 통해 공통의 언어법칙과 구조를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구조주의적 태도는 《내러티브의 담론행위》라는 책에서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내러티브와 담론행위의 공동 구조를 발견하려 한 주네트(Gerard Genette)와, 은유와 환유 이론을 통해 구조주의 이론에 공헌한 야콥슨(Roman Jakobson)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래서 구조주의자들은 개별 작품보다는, 공동패턴이나 심층구조를 찾아낼 수 있는 신화나 동화 또는 탐정소설을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구조주의의 이러한 특성은, 처음부터 숙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구조주의는 개별 텍스트들의 특성과 가치는 무시한 채, 전체적인 '구조'만을 중시하는 제체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구조주의자들은 한 작품의 의미가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가 아니라, 그 개인을 지배하는 사회구조와 언어체계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곧 개별 작가나 작품의 고유성 또는 특성을 무시하고, 전체를 중시하는 집단 사고의 폐해를 불러왔다. 구조주의자들은 또 언어에만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작품의 역사적 맥락은 무시하는 우를 범했으며, 언어와 기호의 재현 능력에도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머지않아 언어나 기호가 사물을 객관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생각에 회의를 갖게 되었고, 그런 인식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탈구조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2. 탈구조주의의 등장 배경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그러한 문제점들을 비판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탈구조주의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발견한 선각적인 구조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되었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구조주의가 끝나고 탈구조주의가 시작되었는가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때문에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단순한 연장도, 또 완전한 배제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탈구조주의는 다음 사항들을 스스로의 명제로 선택하고 있다.
① '전체'를 아우르는 문법이나 체계나 구조보다 '개체'의 존엄성과 특성 인정
② 경직되지 않은 열린 사고와 열린 태도 지향
③ 역사의 중요성 인정
④ 절대적인 진리의 독선과 횡포 거부 · 이분법적 사고방식 극복 · 타자의 인정과 포용
⑤ 기호와 언어의 재현능력 불신
과연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언어체계를 그 기본으로 하고 있는 구조주의는, 언어를 포함한 모든 기호들의 재현능력을 믿는다는 가정 위에 세워진 것인데, 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그러한 낙관주의적 가정에 회의를 제기하고 구조주의가 제시하는 안정을 뒤흔들면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바르트는 초기 저서인 《신화》나 《기호학》에서는 구조주의적 접근방법이 모든 문화적 · 사회적 기호 체계를 설명해 준다고 주장했지만, 후기 저술인 〈저자의 죽음〉이나 《S/Z》,《텍스트의 즐거움》에서는 명백한 탈구조주의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바르트는 독자가 저자의 의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텍스트의 의미 형성에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텍스트의 고정된 의미를 부인했다. 저서《S/Z》에서 바르트는 독자가 어떻게 저자가 감추어 놓은 고정된 의미를 찾아내는 단순한 소비자에서, 자신에게 맞는 의미를 생성해내는 적극적인 생산자가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바르트는 그런 경우, 독자가 만들어내는 그 작품을 '쓸 수 있는 텍스트'라고 부른다. 바르트는 이 '쓸 수 있는 텍스트'는 "독자의 관습적인 생각을 불안하게는 하지만, 단순한 즐거움이 아닌 정신적 희열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한다. 탈구조주의자로 돌아선 후기의 바르트는, 언어나 기호는 명료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통해 독자가 진실에 도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르트는 언어의 그러한 불완전한 속성을 인정하고 '유희'적 글쓰기를 통해 유연성을 보여주는 작가나 작품이 훌륭하다고 보았다.
3. 자끄 데리다의 해체 이론과 탈구조주의
해체주의 또는 해체 이론은 크게는 탈구조주의에 속하는 사조로서, 1960년대 후반에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파리 고등사범 교수인 데리다가 창시했다. 데리다의 해체 이론은 신비평에 대해 반발하던 소위 미국의 '예일학파, 즉 폴 드 만, J.힐리스 밀러, 제프리 하트만, 해롤드 블룸 등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해체 이론의 시작은 1966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열린 '비평의 언어와 인문학'이라는 주제의 국제 심포지엄이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유럽의 구조주의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이 학회에는 르네 지라르, 조르주 풀레, 루시엥 골드만, 츠베당 토도로프, 롤랑 바르트, 자끄 라깡 같은 사람들도 끼어 있었는데, 그 심포지엄에서 36세의 한 프랑스 학자가 연단에 올라가 당대의 주류 사조였던 구조주의와 저명한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을 예리하게 비판한 논문을 발표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젊은 학자가 바로 해체 이론의 창시자 자끄 데리다였으며 그 논문은 <인문학의 담론 행위에 있어서의 구조, 기호, 그리고 유희>였다. 그 다음 해인 1967년에 데리다는 세 권의 저서인 《글쓰기와 차이》,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목소리와 현상》을 출판하여 해체 이론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데리다의 해체 이론은 서구의 형이상학이 기본적으로 글보다 말을 더 중시하는 '말 중심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된다. 즉 데리다는 서구의 형이상학이, '말'은 화자의 생각을 명백히 전달해주는 데 반해, '글'은 화자와 청취자의 부재 속에서 문자라는 기호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원래의 의도와는 거리가 생긴다고 말한다. 예컨대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은 '글'은 근원의 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사생아가 된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왜곡과 오해의 원천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연 글로 쓸 때는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상대방에게 오해를 사기 쉽다.
데리다는 '글'뿐만 아니라 '말'의 의도와 의미 사이에도 거리와 차이와 단절이 있음을 주장하며, 서구인들이 믿는 '절대','진실', '근원', 혹은 '중심'의 부재를 주장함으로써 서구 형이상학의 가설을 근본에서부터 해체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절대적 진리'가 부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다만 환상, 흔적, 또는 유사품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데리다에 의하면, 언어가 포착해서 재현하려고 하는 절대적인 진실이나 고정된 의미는 사실 언제나 유보되어 있기 때문에, 텍스트는 그 부재하는 진리의 흔적을 추적하는 부단한 언어의 유희가 된다.
데리다는 '말'보다 '글'의 우위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말'과 '글'은 상호배타적인 이분법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보충적이라고 말한다. 즉 '말'은 '글'을 서로 상대방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를 간단히 규정지을 수 없으며, 자신이 '차연(Differance)'이라고 부르는 '차이'와 '유보'의 혼합개념에 입각해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데리다는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내부에서부터 해체한다.
데리다는 철학이나 문학이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 절대적 진리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부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우리가 리얼리티로 알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허구일 수도 있으며, 사실이라고 제시된 것도 단지 은유일 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데리다는 '말'이나 '음성'도, 그 자리에 '부재'해 있는 '글'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말의 의미 전달 역시 완벽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데리다는 또 서구 형이상학이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와 같은 이분법적 태도는 오류라고 주장한다. 이분법적 구분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과 탈중심 사상, 그리고 그로 인한 경계해체 및 혼혈문화의 생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명제와도 상통한다.
4. 미셸 푸코의 담론 이론과 탈구조주의
미셸 푸코는 데리다의 이론이 언어를 역사적 · 사회적 맥락에서 문리시켜, 언어가 마치 독자적인 존재인 것처럼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던 탈구조주의 계열의 사상가였다. 데리다가 "우리는 결코 텍스트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텍스트와 언어의 문제로 귀결시켰던데 반해, 푸코는 '글쓰기'란 복합적인 권력을 만들어내는 행위이고 '텍스트'란 곧 그 복합적인 권력이 투쟁을 벌이는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푸코는 텍스트란 결코 역사적 · 사회적 요인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저자 역시 단순한 개인이 아닌 당대의 담론행위에 동참하는 사회적 · 정치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푸코는 <저자란 무엇인가?>에서 담론행위를 통해 또는 고정된 의미의 부여를 통해 저자가 텍스트 속에서 어떻게 독자들을 억압하고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지식과 권력, 그리고 절대적 진리와 억압 사이의 함수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푸코는 당대의 지배 권력이 지식과 결탁한 다음, 어떻게 스스로를 합법화시켜 나가는가에 주목했던 사상가였다. 그렇다면 푸코가 말하는 담론행위란 지식과 권력이 담합하여 만들어내는 당대의 진리를 통해 우리의 사고체계를 지배하는 글쓰기 행위라고 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푸코의 사상은 그가 네덜란드의 어느 TV에서 <인간의 본성: 정의와 권력>이라는 제목으로 촘스키와 토론을 벌였을 때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회자가 인간이 정치적 폭력에 대항해 싸워야만 되는 이유를 묻자 촘스키(Noam Chomsky)는 "고상한 목표, 즉 정의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지만, 푸코는 대답 대신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시함으로써, 촘스키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드러냈다.
나는 정의라는 개념 그 자체가, 어떤 정치적 · 경제적 권력의 도구로서 또는 그러한 권력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만들어져 각기 다른 형태의 사회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개념이라고 봅니다.
즉 푸코는 '정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자신의 이론을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배 권력이 내세우는 정의의 개념은 그 지배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합법화시킨 것일 뿐, 혁명 후에는 언제든지 불의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때닫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성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정의를 포함해서)는 유효성을 상실하거나 해체되어 버리고 만다.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정의'는 부의 평등과 특권계급의 불인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것이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개념이지 빈부와 계급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컨대 한국사회에서는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나누어 갖고, 특권층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을 사회정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식 '정의'는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불법'이자 '불의'가 될 수도 았다. 그래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Michael Sandel) 교수는 절대 이것이 정의고 저것이 불의라고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인간사는 복합적이어서 정의 아니면 불의 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구사회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역사를 성찰하다가, 푸코는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정상적이라고 규정한 집단이 자신들과 상치되는 다른 것들을 '비정상'으로 몰아 제외시키고 침묵시켰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푸코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법칙들과 규제들의 '보관소'가 내리는 지시 속에서 글을 쓰고 행동하게 되며, 그것을 거부하면 제도적 권력에 의해 제외되고 침묵당해 왔다고 지적한다.
푸코는 지배 권력이 어떻게 국민을 합법적으로 속박해 왔는가를 성찰하면서, 보호감호와 분리정책에 대해 언급한다. 《광기와 문명》에서, 푸코는 최초의 소수 집단의 주변부 추방이었던 중세의 나병환자 격리로부터 시작해, 1656년 파리 빈민구호병원의 극빈자, 부랑아, 광인의 강제감호수용, 그리고 19세기의 광인분리수용이라는 강제 수잔을 썼으며, 그것을 사회정화 또는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합법화시켰다는 것이다. 푸코는 19세기에 등장한 심리학, 범죄학, 사회학 등의 학문들이 전신병자, 죄인, 환자 등을 구별하는 임의적 기준을 마련해 줌으로써 그 강제 수용의 합법화를 도와주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지식이 어떻게 권력과 결탁하여 지배적 담론행위를 만들어내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지식과 권력의 결탁은 또 훈육(discipline)이라는 미명하에 타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합법화 · 정당화시켜 준다. 그러한 정당화는 압제자로 하여금 지배자로 군림하도록 해주고, 피압제자는 압제에 순응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그 두 부류 모두를 피해자로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평생을 감시와 교화를 하고 사는 간수와, 늘 감시와 교화를 받고 사는 죄수는 둘 다 똑같은 피해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감시라는 미명하에 권력이 얼마나 잔인하게 개인을 억압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푸코는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이 설계했으나 실현되지 못한 '판옵티콘(panopticon)'을 제시한다. '판옵티콘'은, 창문이 있는 감방들이 원을 이루고 둘러서 있는 중앙에 감시탑이 있는데, 감시탑에서는 감방들을 내려다볼 수 있지만 감방에서는 감시대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감시대에 감시인이 없어도 죄수들은 자신들이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규율을 위반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감시와 훈육의 목적은 비정상인의 정상화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정상화 판정을 받은 비정상인들은 대부분 모범수가 되어, 이번에는 제도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여 동료들을 억압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는 점이다.
푸코는 권력과 지식이 결탁해 만들어낸 제도적 폭력과 억압이 비단 정신병원뿐 아니라 형무소, 복지원, 고아원, 병원, 학교 등 모든 사회제도에도 해당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곧 인간은 권력과 지식의 담합이 만들어낸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도처에 스며들어 있고 편재해 있어서 더 이상 표면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시대마다 그것에 노출된 채 태어나고, 그것에 의해 교육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푸코는 비평가의 작업은 바로 그 보이지 않게 된 것을 탐색하여 보이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푸코는 우리에게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사실은 지배 권력이 만들어 놓은 상대적 진실일 뿐이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그 존재를 믿는 모든 것의 절대성 역시 허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데리다처럼 푸코 역시 잃어버린 근원과 사라진 절대적 진실에 대한 향수보다는, 니체식의 계보학적 탐색을 통한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인식을 제안한다. 그것은 곧 고정되고 절대적인 관습적 사고체계 대신, 유동적이고 상대적이며 다원적인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타자에 대한 인식과 인정을 통해 자신을 경직된 사고의 패각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탈구조주의는 바로 그러한 깨우침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문예사조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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