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수의 문학 프리즘 2>
2016년 겨울, 남하리에서(발췌)
강동수 / 소설가
'문학주의' 그리고 만행
한국문학에 드리운 위기의 뿌리를 '문학주의'에서 찾는 어떤 문학평론가들의 주장을 들을 때 무지한 나는 '문학주의'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현실의 절실한 화두에서 한발 떨어져 문체적 미학이나 실험을 위한 실험, 전위를 위한 전위 따위에 골몰하는 태도를 말하는 게 아닌가 하고 눈치로 때려잡을 뿐이다.
아마 그 평론가들의 주장이 옳을 것이다. 아니, 나도 그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암호 같은 어떤 젊은 시인들의 시들을 읽을 때 나는 곤혹스럽다. 독자들을 타자로 소외시키고 자기들끼리만 이너서클화하는 태도는 문학의 영역을 스스로 좁히고 결과적으로 문학을 주변 장르로 내쫓는 결과를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지난해 한국의 문학장을 뒤집어 놓았던 어떤 소설가의 표절 파문도 그 뿌리를 캐고 보면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새로운 전통(?)이 돼 버린 '문학주의'에까지 닿아 있을 게다.
어쩌면 80년대의 반동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지금 여기'를 떠나서 문학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80년대로 되돌아가자는 건 아니지만 경박히 재기로 찬탄 받고, 난삽히 전위로 옹호되는 지금의 문학 풍토가 마땅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글쎄, 나도 어느덧 '꼰대'가 되었기 때문일까.
글쎄, 신사조의 경도이건, 문체 미학의 극한 추구건 다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학적 태도가 인정받으려면 그 근거와 경로는 밝혀져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 뿌리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90년대 초년에 느닷없이 한국문단에 직수입된 '누보로망'의 번안판들이 지금의 관점에서 어떤 문학적 기여를 했는지 무지한 나는 모르겠다.
아마 한국문학은 앞으로 더 많은 좌절을 겪어야 할 모양이다. 더 많은 암중모색이 필요할 모양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아닌, 남하리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불 꺼진 방에서 혼자 뒤척거리다 문득 든 생각 한토막이다.
내가 기숙하는 문학관의 앞마당엔 꽃밭이 있다. 한겨울인 지금은 벽돌로 구획만 지어져 있을 뿐 맨땅이다. 그러나 그 맨땅 위엔 하얀 팻말들이 꽂혀 있다. 튤립, 붓꽃, 공작초, 매발톱꽃, 우단동자꽃……. 그 팻말 밑 땅속에선 지금 구근들이 봄을 기다리며 동면하고 있을 거다. 나는 쭈그려앉아 팻말들을 오래 들여다본다. 그 팻말이 있음으로 해서 다가올 봄날, 그 뿌리들이 틔우는 연록빛 싹에서 우리는 그 꽃들의 존재를 구별할 수 있다. 아니, 그 팻말에 적힌 제 이름에 고무되었기에 뿌리들은 싹을 틔우는지도 모른다.
문학도 그러할 것이다. 그 존재에 걸맞은 이름을 부여하는 것. 제각기의 개성을 담은 팻말을 땅 위에 꽂는 것. 어쩌면 그게 한국문학이 지금 시작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남하리에서의 한철이 끝나가고 있다. 동안거가 끝나면 납자들은 가부좌를 풀고 바랑 하나 짊어지고 만행을 나선다. 나도 만행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랑은 비어 있고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참고: 1. '홀로움'에 대하여/ 2. 겨울 들판에서/ 3. '헬조선'과 흙수저/ 4. '문학주의' 그리고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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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엠포엠』2016-봄호 <강동수의 문학 프리즘 2>에서
* 강동수/ 1961년 경남 마산 출생. 1994년《세계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졸업. 소설집『몽유시인을 위한 변명』『제국익문사』『금발의 제니』. 오영수문학상. 봉생문학상. 허균문학상. 201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혜. 국제신문 수석논설위원 역임. 전)부산작가회의 회장. 현)경성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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