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지 않아도』사토 리에 _ (발췌)
- 말보다 진한 대화
- 3천만 일본인을 감동시킨 실화 인기 드라마 <필담 호스티스> 원작
한성례 옮김
귀가 들리지 않게 된 것은 세상에 태어나 1년 10개월이 지난 생후 22개월 무렵부터였습니다. 너무 어렸을 때여서 사고 전 소리가 들렸을 때의 세계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열아홉 살 때 귓속에 전극을 꽂아 속귀신경을 전기로 자극해 청각을 되돌리는 인공고막수술을 받았으나, 재활 단계에서 극심한 구통에 시달리다 결국 소리를 되찾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저 같은 청각장애인은 모두 수화로 대화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으시죠? 최근에는 청각장애자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도 여러 편 제작되었는데, 주인공들이 모두 유창하게 수화를 구사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화를 못하는 청각장애자도 많습니다. 실은 저도 수화는 초보자 수준이어서 어려운 말은 물론이고 일상적인 대화조차도 거의 하지 못합니다.
그런 제가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중요하고 유일한 수단은 바로 필담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필담은 말을 일일이 적어야 하므로 귀가 들리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고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글자만 읽고 쓸 수 있다면 특별한 훈련 없이도 장애를 가진 사람과 건강한 사람끼리 손쉽게 커무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필담의 단점은 제쳐두고 장점만을 생각한다면 호스티스라는 일에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일을 시작할 당시 불안한 마음이 아주 없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태어나고 자란 아오모리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호스티스 경력을 쌓은 후, 지금은 밤의 환락가 긴자에서 보통 호스티스와 같은 한 사람의 몫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책을 출판하자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거절할 생각이었습니다.
장애를 물건처럼 팔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리에 씨가 책을 쓰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큰 격려가 될 거야. 단 한 사람이라도 리에 덕분에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책을 내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 말에 공감하고 집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언제나 저와 함께 다니는 '짝'은 마음에 드는 펜과 손바닥만 한 크기의 메모장입니다. 펜은 어느 분께 유품으로 받은 오래된 카르티에와 몽블랑 만년필, 메모장은 대대로 이어온 프랑스의 메이커 로디아의 메모패드에 칼라차트라는 메이커의 광택나는 가죽 커버를 씌운 것.
이 두 파트너와 함께 제 필담 호스티스 인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제 인생과 생각, 가족에 관한 것, 앞으로의 꿈 등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또 손님에게 즐거움과 편안한 기분을 선물하기 위해 필담에 어떤 말을 적고, 평소 어떤 식으로 손님을 대하는지 그 비밀도 함께 전하겠습니다.
지금 저는 미래의 꿈을 향해 전속력으로 밤의 긴자를 달리고 있습니다. 긴자의 법칙에는 위반되지만, 가능하면 빨리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특별히 두 가게를 겸해 나가고 있습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자.'
이 같은 제 마음이 이 책을 읽어주시는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시작합니다. (프롤로그, 부분)
칠판에 커다랗게 새겨진 상처
오빠와 미유키는 없었지만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기고 공부도 재미있어서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마냥 즐거웠습니다. '들리는 교실' 덕분에 공부도 잘하는 편에 속했습니다. 성적은 언제나 상위권이어서 수업을 듣는 데 힘들어 했던 기억도 없습니다. 시험은 들리는 교실에서 배우는 국어와 산수를 포함해, 모든 교과목을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보았습니다. 짝꿍과 바로 앞에 앉은 친구가 항상 성적이 좋은 내 답안지를 필사적으로 훔쳐보려고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웃음) 선생님도 존경할 만한 훌륭한 분이 많이 계셨던 학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슬픈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도 용서가 되지 않는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제가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들리는 교실을 담당하신 A 선생님입니다. A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도 권위적인 태도의 언행을 서슴지 않았고, 학생들에게는 무서운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단순히 엄격하다는 이유로 선생님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은 수업에 전혀 의욕이 없었습니다. 안 들리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들리는 교실 수업인데도 열심히 가르치지 않았고 맥 빠지게 자주 자습을 시켰습니다. A 선생님에게 배우기 이전인 1학년부터 3학년까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대로 스스로 교과서 문제를 푸는 자습 같은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아무리 고민해도 모르겠는 문제가 있어서, 싫은데도 벌벌 떨며 A 선생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읽고 있던 만화책에서 눈도 떼지 않고 관심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서 생각해!"
이처럼 들리는 교실의 수업은 점차 의미를 잃어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으니 가르쳐주세요"라고 몇 번을 부탁해야만 그제야 귀찮다는 듯 마지못해 가르쳐주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들리는 교실 수업 중에 나는 갑자기 배가 아팠습니다. A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의사도 아닌데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저는 몹시 놀랐습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저런 대답은 너무 심하잖아……."
그렇게 생각한 나는 화가 나서 입을 다물고 양호실로 향했습니다. 그때부터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양호실을 찾아가 양호선생님께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 저의 반항적인 태도가 A 선생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사건'은 일어났습니다. 계기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내가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했든지, 아니면 무심코 어떤 말을 내뱉었던 모양입니다.
수업 중에 내게 화가 난 A 선생님은 칠판에다 하얀 분필로 큼직하게 이런 글을 썼습니다.
"너는 신에게 귀를 빼앗겼다."
평소에도 귀가 들리는 않는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던 저는 자신의 장애게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비관적인 생각으로 끙끙댄 적이 없습니다. 생각한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어린 마음에도 단호하게 포기하는 습관이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나였지만 '신에게 귀를 빼앗겼다'라는 글씨를 보는 순간, 억울함과 슬픈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이성을 잃은 나는 A 선생님을 향해 마구 교과서와 필통 등을 던지고, 쇳소리에 가까운 말로 욕설을 퍼부으며 교실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처럼 양호실에 들어가 양호선생님께 분노를 폭포처럼 쏟아놓았습니다.
불행히도 사건은 그 일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친구들과 급식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A 선생님이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예상 밖의 방문에 친구들과 나는 무슨 일일까 싶어 두 눈을 끔뻑거리며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A 선생님은 나를 한 번 힐끗 보더니 칠판에 다시 커다란 흰 글씨를 휘갈겨 썼습니다.
"너는 신에게 귀를 빼앗겼다."
더욱이 칠판이 글자로 가득 채워질 만큼 몇 번이고 계속 써댔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학교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몹시 부끄럽고 충격적이어서 뭐라고 항의를 하거나 맞설 생각도 못했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도 못한 채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당시 교실에는 담임선생님도 계셨지만 평소에도 강압적인 A 선생님의 행동이 두려웠는지 항의조차 해주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로해주지도 않았고, 오히려 교실에서 도망치듯 나가버렸습니다.
주위 친구들은 우는 얼굴을 보인 적이 없던 내가 소리내어 우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위로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의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분한 마음과 울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뒤섞여, 걱정하며 말을 걸어주는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확실히 그 일은 어린 저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나봅니다. 엉엉 울고 난 후에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떻게 그 상황이 수습됐고, 그 후 뭘 했는지, 그날 어떻게 집에 돌아갔는지……. 기억해내 자세히 쓰고 싶지만 몇 시간을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부모님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면 몹시 걱정하시겠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는 내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좀처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자잘한 일까지 의논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만큼 남보다 뭐든 잘해야만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그런 식의 말을 늘 부모님께 들어왔기 때문에 그 말이 가슴속에 박혀 있었나 봅니다. 그렇게 저는 부모님께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물론 지금은 부모님의 속마음과 내게 해준 말의 깊은 뜻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일 이후로는 들리는 교실에서 A 선생님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도록 숨죽이며 조심스럽게 생활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싫다고 발버둥쳐도 들리는 교실은 계속 다녀야만 했으니까요.
"A 선생님의 수업은 듣고 싶지 않아요, 제발 듣지 않게 해주세요. 나도 다른 아이들과 같이 국어와 산수 수업을 듣고 싶어요!"
몇 번이나 그렇게 호소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말해야 좋을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힘겹게 참아낸 날들도 지나가고 초등학교 졸업식이 되자 안도감이 몰려왔습니다.
'A 선생님과는 이제 만날 일이 없다!'
졸업도다 그 사실이 몇 배나 기쁠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설마 8년 후에 놀라운 장소에서 A 선생님과 재회하리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p.46~51)
옮긴이의 말 _ 필담만으로 긴자 최고의 호스티스가 되다
아오모리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리에는 생후 1년 10개월 때 수막염에 걸려 청력을 잃는다. 제대로 된 발음을 들어본 적이 없기에 말조차 하지 못하는 농아가 된다.
청소년기에 리에는 엄격하게 키우려는 어머니께 반항을 하고 학교에서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차츰 보통의 삶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술과 담배, 도둑질까지 하며 부랑아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접객업을 발견한다.
살아야 할 목적을 잃고 방황하던 리에는 어느 날 클럽 마담과 만나게 되고, 클럽에서 일을 시작한다. 리에는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못하기에 필담을 구사해 손님을 접객하는 지혜를 짜낸다. 필담으로 최선을 다해 접객을 하면서 리에는 호스티스로서 개화하고, 자신이 접객 일을 하면 즐겁다는 것도 깨닫는다. 발 디딜 곳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게 해준 직업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리에는 '일본 최고의 호스티스'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밤의 세계의 중심이자 치열한 생존 경쟁이 있는 도쿄 긴자를 목표로 상경한다.
리에는 긴자에서도 곧 유명해졌고, 점점 더 뛰어난 필담력을 구사하는 호스티스가 된다. 항상 지니고 다니는 메모장에 만년필로 글씨를 써 고객과 대화를 하면서 밤 세계의 갖가지 술책을 뛰어넘고, 정상인보다 훨씬 높은 매상을 올린다. 리에는 호스티스 세계에서 자신이 가진 오기와 끈기를 내면의 따뜻함과 잘 조화시켰다. 자신의 일에 대해 긍정적이었던 리에는 어떤 질문에도 밝게 "Yes!"라고 대답한다.
리에의 필담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글씨다. 그녀는 글씨만 예쁜 것이 아니라 얼굴까지 미인이다. 아마도 리에는 언제나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위해 최고의 미소와 글자로 일류의 분위기를 연출해낼 것이다.
리에의 필담은 일기 쉽고 재미있다는 점이 특징아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글, 해학이 담긴 글, 지식과 삶의 철학이 담긴 글 등 리에의 필담 인생을 기록한 이 책은 한 권의 소설이기도 하다.
메모지와 펜으로 하는 접객이었기에 가능했을 '섬세한 표현'이나, '손님과 필담을 주고받는 중에 나오는 명언'은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 고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힘을 주었다. 어쩌면 그녀가 만든 독자것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요즘처럼 메마른 시대에 가장 필요한 대화법일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아도』는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많은 화제를 뿌렸다. 대화가 기본인 물장사 세계에서 장애를 숨기지 않고 필담만으로 접객을 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리에의 삶은 일반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가족과 소원했던 리에는 '긴자 No. 1'이라는 이름을 얻고 나서 부모님을 찾아간다. 그때까지 자신의 삶을 지켜보며 힘들어하던 부모님이 늘 마음에 걸렸던 탓이다. 항상 말없이 지켜주던 오빠와 리에의 부모님은 호스티스로서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는 그녀를 부끄러워자히 않고 따뜻하게 받아준다. 그러한 가족의 모습이 경이롭다.
호스티스로서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리에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는 고객 관리에 뛰어난 한 사람의 영업사원이나 비즈니스맨과 별반 다르지 않다. 리에가 긴자 최고의 호스티스가 되기까지 정상인에 굴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녀의 정신력과 노력가로서의 면모는 우리에게 큰 힘을 준다.
실제로 긴자의 클럽은 고급 사교장처럼 회원제로 운영되며, 정치인, 기업인, 학자, 예술가 등 일본 사회의 상류층들이 주요 고객이다. 아무나 드나드는 술집과는 사뭇 다르다.
고객 관리에 뛰어난 리에는 자신이 나서서 장애인들오가 일반인이 어울려 일하는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폈다. 부디 리에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해본다.
끝으로 리에는 "한국과 한국 드라마, 가수를 좋아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여러분께 제 마음이 전해진다면 어없는 기쁨입니다. 한국 독자 여러분 사랑합니다"라고 저자로서 고마움을 전해왔다. (한성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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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아도』/ 초판 1쇄 발행 2011.2.14. 개정판 1쇄 발행 2015.1.25. <(주)비전비엔피· 이덴슬리벨>펴냄
* 사토 리에(部藤里惠)/ 1984년 아오모리 현 출생. 병의 후유증으로 생후 1년 10개월 만에 청력을 완전히 잃고 제대로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청소년기에 아오모리의 대표 불량 소녀라고 불렸지만, 접객업의 즐거움에 눈을 떠 호스티스 일을 시작. 필담(筆談)으로 구사하는 독자적인 접객 방식으로, 도쿄 긴자의 클럽에서 No.1 호스티스로 활약 중이다. 현재 아오모리 시의 관광대사로 자신의 고향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 한성례/ 1955년 전북 정읍 출생, 세종대학교 일문과 졸업. 세종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국제지역학과 일본전공. 1986년『시와 의식』신인상으로 등단. <허난설헌문학상>, <시토소조상>을 수상. 저서로는 한국어 시집『실험실의 미인』, 일본어 시집『감색치마폭의 하늘은』『빛의 드라마』등이, 역서로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1리터의 눈물』『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달에 울다』『방황의 계절』『타타도』등이 있다. 정호승 외 한국 시인들의 시도 일본어로 다수 번역, 출간했다. 현재 세종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국제지역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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