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허공 길/ 강서완

검지 정숙자 2024. 8. 29. 12:43

 

    허공 길

 

     강서완

 

    

  한 번도 질문하지 않은 빛이 꽃을 물고 와  

  나뭇가지에 쏟아졌다

  빛이 흔들리는

  그것이 유목이거나 사건이거나

  빛에 몰려드는 새들을 쫓지 않았다

 

  수많은 걸음이 허공을 걸었다

  가지는 가지를 만들고

  꽃이 새로운 알을 여는

  그것이 형상이거나 흐름이거나

  창마다 빛이 쏟아지고

  보이지 않는 길이 생기고 허물어졌다

 

  비바람에 뒤집히면서도

  왼쪽이 기울어지면서도

  그 많은 빗살들을 어디에 쟁이는지

  어떻게 둥근 그림자를 만드는지

 

  구름이 뭉쳐 쏟아지는 대로

  시든 꽃잎 지는 대로

  하늘가 멀어지는 새 떼와

  돌아오는 새 떼를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강물에 하얗게 퍼덕이는 윤슬이

  흰 머릿결에 빛날 때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궤적이

  안을 둥글게 채웠을

  씨앗 속

  허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막 생성하고 소멸하는

  현재 아닌 과거

  과거 아닌 미래를

  흐르는 강물을 만났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허공 한 줌의 햇살로

  바람으로

    -전문(p. 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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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징학연구소』 2024-가을(15)호 <나의 시론 나의 시/ 신작시>에서 

 * 강서완/ 2008년 『애지』로 등단, 시집『서랍마다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