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마음
문보영
언젠가 파리 한 마리가 내 방에 들어왔다. 문을 열어놔도 나가지 않는다. 삼일 차. 좀 야윈 것 같다. 앉아서 쉬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불을 덮고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는데 파리가 무릎 위에 앉는다. 같이 드라마 보는 사이가 되었구나. 외롭기 때문에 파리에게조차 우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외롭지 않으므로 파리를 내 삶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리라. 난 캐스트 어웨이에서 빠삐용이 외로웠기에 배구공에게 인격을 부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떨어진 그는 마침내 자유로웠고, 외로움에서 해방되었으며, 마음의 여유가 생겨 우정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졌기에 배구공을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토요일이다. 일어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기대를 품고 깨어난다. 꾸물거리다 바닷물로 샤워를 하고 커튼을 걷고 창문을 조금 열어 바깥공기를 마신다. 함께 지내던 동거 파리는 어디 갔나. 나중에 죽을 때가 되어서는 이판사판으로 내게 달려들던데. 파리는 내 얼굴을 향해 돌진하기도 했다. 어떻게 좀 해 봐! 하고 면전에 대놓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문 열어뒀잖아. 나는 다 알려줬다. 그러나 파리는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른다. 나는 나의 마음을 잘 모른다. 나랑 며칠 생활하더니, 파리는 내게 죽일 마음이 없다는 걸 눈치챘는지 갈수록 과감해졌다. 그리고 요구했다. 요구···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요구한다. "사랑해 줘. 여기에서 나가게라도 해주던가."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무인도에서.
-전문(p. 1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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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경계』 2024-여름(61)호 <신작시>에서
* 문보영/ 제주 출생,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외, 산문집『일기시대』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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