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함부르크/ 안주철

검지 정숙자 2024. 8. 22. 01:56

 

    함부르크

 

        붉은 벽돌

 

     안주철

 

 

  작은 다리 여러 개를 건넜어요

 

  낡은 벽돌의 집 아래 수로에는 키가 작은 물이 흘러가고 있어요

  앉은 키나 선 키나 비슷하고요

  오리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로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고요

 

  밤에 가까울수록 노을은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집 같아요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아요

  문이 없어서 오래오래 문을 찾아야 할 것 같고요

  

  유리창이 없는데 은은한 빛 무리들이 날아다녀요

  손을 뻗어보고 싶어요

  저의 두 손도 날아다닐 수 있을지 모르니까

 

  붉은 벽돌의 집은 사라지지 않나봐요

  서서히 자신을 감추었다 서서히 자신을 꺼내놓기도 하니까요

 

  수로 옆 잔디밭에는 낮에 책을 읽다 떠난 사람의 등이 자리를 옮겨가면서 희미해져가고 있어요

 

  다시 여러 개의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들어갈 수 있는 집인데 오랫동안 붉은 벽돌의 집을 바라보았기 때문일까요

 

  들어갈 수 없는 거예요

  제가 나온 문도 찾을 수 없고요

 

  거대한 쓰레기장 뚜껑 위로 쏟아지는 노을의 붉고 가는 모래를 보면서 

  깜빡 집에 들어갈 생각을 잊고 있어요

 

  식지 않았을까

  전기구이 통닭을 만지면서

 

  손을 넣으면 손이

  발을 넣으면 발이

 

  감추어지는 밤이 오고 있어요

     -전문(p. 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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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경계』 2024-여름(61) <신작시>에서

  * 안주철/ 강원 원주 출생, 2002년『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느낌은 멈추지 않는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