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티처럼 날아오를 자전거가 필요해/ 신은숙

검지 정숙자 2024. 8. 24. 00:14

 

    이티처럼 날아오를 자전거가 필요해

          주만 걷기 대회

 

     신은숙

 

 

  가을엔 좀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동네 한 바퀴 돌아 공원에 도착하면

  기념품도 나누어 준다고 했다

 

  경품권을 손에 꼭 쥐고 걸었다

  날이 맑았다 벚나무 가로수가 울긋불긋

  보도블럭의 기하학에 눈뜨면서

  두어 시간 걸어 공원에 도착했다

 

  광장에서 기다리는 건

  커다란 티비와 청소기, 밥솥이랑 자전거

  쌀 수십 포대와 두루마리 휴지

  경품이란 꼬리표를 달고서 우르르

 

  바닥에 앉아 시의원님 격려사도 듣고

  동장님 말씀도 듣고 태권도 경연도 보고

  

  쿵짝쿵짝 가을 땡볕이 따가웠지만

  손부채로 땀을 식혀도 보았지만

 

  사람들은 하나 둘 땅거미와 함께 사라져가고

  쌀도 떨어지고 휴지도 동나고

  마지막 자전거를 끌고 떠나는 이의 등만 보이고

 

  남은 사람 별로 없는데

  끝까지 경품권 손에 꼭 쥐고 명색이 시인인데

  욕심 어쩔 거냐 벚나무가 눈 흘겨도

 

  다만 벚꽃 가로수 길 지나 자전거 타고

  이티처럼 지구 밖으로 날아오르고 싶었다

     -전문(p. 9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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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경계』 2024-여름(61) <신작시>에서

  * 신은숙/ 강원 양양 출생, 2013⟪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모란이 가면 작약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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