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 한 그릇
고선주
문예창작과 지망생인 딸내미가 올빼미가 됐다
뜬 눈 하얗게 지샜지만 날아가지 못했다
밤새 글 날갯짓하느라 기상은 없고 눈만 뜨다
점심을 맞는다
방문 열어도 모른 채
죽음보다 깊은 잠
밤새 잘 익은 글을 원했을 것이지만
한참 나갔던 글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멀리 줄거리를 뺀 줄알았는데
여전히 초입니다
늘 잘 익은 글을 소망했겠지만
풋내 가득한 글만 만진 것이다
그의 아버지도 사십년 넘게 글을 써 왔으나
여전히 곰삭은 글을 맞이하지 못했다
살면서 서로 피차 뜨거운 맛은
피해보자 약속하며
사춘기와 갱년기 간 일시 휴전을 선언한 뒤
곰탕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포장 하나 해서 털레털레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조수석에 앉은 딸내미 무릎 위에
신작 시집을 깔고 포장해온 곰탕 한 그릇 올려놓았다.
집에 도착해 내릴 무렵
단 한번도 익혀보지 못한 시편들이
따끈따끈하게 데워져 있었다
우연히 잘 익은 신작시들 앞에서
딸내미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전문(p. 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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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아돌하』 2023-여름(67)호 <신작시>에서
* 고선주/ 전남 함평 출생, 199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 『열린시학』등 시와 평론 발표, 시집『꽃과 악수하는 법』『밥알의 힘』『오후가 가지런한 이유』『그늘마저 나간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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