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강산, 드넓은 세상에서 노닐다
유병배
박물관 신국보보물전 전시실
강과 산 그리고 그 시절의 사람들이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화폭에 끝이 펼쳐진다
'어럴럴 상사디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선소리꾼이 메기는 소리
곡선으로 휘어진 디지털 영상 스크린이 열리자
그 시대의 사람들이 뛰어나와 춤사위를 벌인다
"강 산 무 진 도"
글자가 물결을 타고 흘러간다
스크린이 잠시 숨을 돌리자
두루마리 횡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두루마리를 따라가니 18세기 후반 정조 임금 시절이 나타난다
펼쳐진 세상 위에 길이 흐르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산하다
풍요로운 세상
사뿐히 날아다니는 아이들
그림과 영상과 음악이 관객과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세상으로 빠져들고
그 시대 사람들의 꿈의 여정이 펼쳐진다
열린 공간에서 뛰며 놀며 즐기는 풍경 저 너머
강산무진도 속으로 걸어간다
형상 없는 공간이 열리고
산들이 잦아지는 골짜기마다 마을이 들어서고 들이 펼쳐진다
들판 저 멀리 산맥들은 윤곽선을 풀어헤치고
연기처럼 엉키고 흩어지며 허공 속을 흘러간다
화가의 손길이 묻어 있는 화폭을 다시금 바라본다.
나는 저 화폭 속에 들어와 있다
-전문(p. 117-118)
*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조선 후기 정조시대 화원화가 이인문의 대표작. 강산만리의 변화무쌍한 대자연과 이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갖가지 백성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그린 44.1×856cm 두루마리 비단 화폭, 국립중앙박풀관 소장.
--------------------------
* 『시현실』 2023-겨울(94)호 <신작시> 에서
* 유병배/ 2019년『에세이포레』로 수필 부문 & 2021년 『시현실』로 시 부문 등단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렌식 금지령/ 윤정구 (0) | 2024.06.17 |
---|---|
가을 깊은 집/ 윤정구 (0) | 2024.06.17 |
야유회/ 유자효 (0) | 2024.06.16 |
등불을 켜다/ 문현미 (0) | 2024.06.16 |
직지(直指)/ 김정자 (0) | 2024.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