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딜레마 이론
이서란
몸을 동그르르 말고 있는 고슴도치
바람이 슬쩍 스치자
순식간에 바늘쌈지 꽃
누가 저리 많은 꽃을 꽂아놨을까
꽃은 가시가 많을수록 아름답게 핀다죠
가시는 꽃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에요
수단의 어디까지가 상처일까요
고슴도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낯선 얼굴을 하고 친절하지 않기로 해요
바늘을 달고 사는 게 숙명인 줄 알면서도
저리 많은 상처를 매달고 어찌 사나
그러려니 하면서도 온기가 그리울 때면
접근해보지만, 서로에게 찔리고 말죠
고슴도치들
저마다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죠
아픔은 딱지가 떨어지지 않은 상처
누구나의 마음속에 앉아 있다가
불쑥, 타인의 관계에서 아물기도 하죠
고슴도치는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요
서로의 예민함에 주의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예의 있게 굴어요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최선의 방법으로 말이죠
-전문(p.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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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인포럼 제1집 『포엠 21』에서/ 2022. 12. 5. <미네르바> 펴냄
* 이서란(본명: 이효순)/ 202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별숲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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