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촉을 세운 달팽이/ 라채형

검지 정숙자 2023. 1. 11. 00:20

 

    촉을 세운 달팽이

 

     라채형

 

 

  내 작은 가게 열쇠를 갖는 것

 

  두 개의 촉을 바짝 세우고

  갈라진 담벼락 사이를

  쉼 없이 기어올랐지

 

  일개미, 일개미

 

  다른 달팽이들

  비아냥거렸어

 

  담벼락에 폭풍은 어김없이 오지

  손톱이 닳도록 부여잡았어

  손가락이 부러지면서 추락했지

 

  부러진 것은 손가락만이 아니었어

  심장이 두 쪽으로 부러졌지

 

  갈라진 담벼락

  다시 기어올랐어

 

  담쟁이는 말없이 숨을 죽이며

  눅눅함에 옷이 젖는지도 모른 채

  온몸으로 껴안고 있었어

 

  회오리치는 등딱지에 서로의 엉킨 말과

  두 촉의 더듬이를 세우고서야 알았지

     -전문(p.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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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시인포럼 제1집 『포엠 21』에서/ 2022. 12. 5. <미네르바> 펴냄  

  * 라채형(본명: 라희정)/ 2021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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