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을 세운 달팽이
라채형
내 작은 가게 열쇠를 갖는 것
두 개의 촉을 바짝 세우고
갈라진 담벼락 사이를
쉼 없이 기어올랐지
일개미, 일개미
다른 달팽이들
비아냥거렸어
담벼락에 폭풍은 어김없이 오지
손톱이 닳도록 부여잡았어
손가락이 부러지면서 추락했지
부러진 것은 손가락만이 아니었어
심장이 두 쪽으로 부러졌지
갈라진 담벼락
다시 기어올랐어
담쟁이는 말없이 숨을 죽이며
눅눅함에 옷이 젖는지도 모른 채
온몸으로 껴안고 있었어
회오리치는 등딱지에 서로의 엉킨 말과
두 촉의 더듬이를 세우고서야 알았지
-전문(p. 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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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시인포럼 제1집 『포엠 21』에서/ 2022. 12. 5. <미네르바> 펴냄
* 라채형(본명: 라희정)/ 2021년 『미네르바』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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