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추사(秋史)/ 윤명규

검지 정숙자 2023. 1. 13. 02:22

 

    추사秋史

 

    윤명규

 

 

  때 절은 두루마기

  소한의 언덕 너머로 끌려가고 있다

 

  성산포 삭바람에

  송아지 흰 울음소리 고드름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고

 

  어깨에 가랑눈 가득 얹은 소나무

  진저리 치듯 겨울을 털어낸다

 

  몇 해째 나 홀로 맞는 댓바람인가

 

  쉰의 끝자락이 묘석의 각자刻字처럼

  깊게 파여 각혈을 하고 있다

 

  멀리 바다가 까치발로 일어서서

  하얗게 남포등을 켜고 걸어온다

 

  가지런한 묵서체들이

  돌게처럼 기어올라 갯바위에

  박쥐 붙듯 붙어 있다

 

  말라 버린 묵향이

  돌하르방 어깨 위에 서럽게 울고

 

  꼬장꼬장한 선비의 등 뒤로

  얼어붙은 기러기 소리

  외로움을 재봉질한다

 

  성산포 앞바다도 더 희게

  심지를 돋우며 숨소리 가쁘다

    -전문(p. 1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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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시인포럼 제1집 『포엠 21』에서/ 2022. 12. 5. <미네르바> 펴냄 

  * 윤명규/ 2020년 『미네르바』로 시 부문 등단, 시집『허물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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