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매미의 집
엄창석/ 소설가
어딜 바삐 가느라고 급히 차를 몰고 있는데 뒷좌석에 파묻혀 아이스크림을 빨던 애가 발딱 일어나 내 귀에 대고 종알거렸다. 울창한 가로수가 있는 길이었다.
"아빠 조심, 나무는 매미의 집이야."
액셀레이터에서 발을 떼고 애의 말을 곱씹었다. 차가 가로수에 부딪히면 사람이 다치는 게 아니라 매미가 나무에서 떨어진다니! 아이의 말엔 쉽게 접근하기 힘든, 문명과 생명에 관한 진리가 포함돼 있었다. 놀랍다. 영혼에 육체의 껍질이 두껍게 쌓이기 전에는 우리는 누구나 선지자요, 명상가요, 예언자가 아니었던가.
-전문 (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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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의식』 2022-가을(128)호 <기획연재_사물의 눈 13>에서
* 엄창석/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슬픈 열대』『황금색 발톱』『비늘천장』『빨간 염소들의 거리』, 산문집『개츠비의 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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