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을 만들다 외 5편 신현정(1948-2009, 61세) 눈과 코를 만들고 코 밑에 생솔가지를 붙여 그럴듯하게 수염을 만들어주고는 적어도 눈사람은 무슨 소리가 뒤에서 나도 서 있는 그대로 앞만 바라보게 했다 세상을 모나지 않게 둥글게 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생각하면 뒤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저 앞만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밤에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것을 눈사람에게 시켰는가 말이다. -전문(p. 41) --------- 주먹 꽃에도 주먹이 있나니 한 때를 살고 망가지는 것들은 주먹을 가지고 있나니 주먹이 있기 때문에 서럽고 뜨겁고 망가진다고 말할 수 있나니 오늘 두어 송이 망가지는 주먹이여, 허공에 가만히 들이밀고 가장 고요한 주먹이여, 고요히 망가지는 주먹이여. -전문(p. 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