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리무진 외 1편/ 문설

검지 정숙자 2024. 2. 18. 13:55

 

    리무진 외 1편

 

     문설

 

 

  할머니 벚꽃 길 따라 가네

  천천히 살다 가네

 

  스물여섯 해 기다려 온 할아버지께

  삼베옷 차려입고 신혼 방에 드네

 

  백발 어린 딸은 오늘밤

  어머니 외롭지 않을 거라고 손뼉을 치네

  바람 든 무릎은 절하기도 버겁네

 

  당숙은 좌우명이 굵고 짧게라며

  연신 소주잔을 비우네

 

  100년을 굽이굽이 떠돌던 할머니

  동전 삼만 냥

  쌀 삼천 석 입에 물고

 

  마을버스 타고 다니던

  그 길 따라

 

  리무진 타고

  마을 뒷산으로 시집가네

 

  벚꽃 향 분칠하고

  오래된 남편 품에 안기네

    -전문(p. 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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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문설방竹門設方

 

 

  4월과 5월에 내리는 비를 흠모하는 것은

  대나무의 오랜 습성이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눈썹달처럼 대나무숲이 휘어지는 건

  무림의 고수들이 낭창낭창 싸움을 하기 때문이다

  쉽게 모습을 흔들고 쉽게 날아다니는 댓잎에

  맹렬히 무사의 칼날이 땅을 긋는다

 

  주인공은 어느 순간 어느 장면에서 죽을까

  끝없이 원수를 찾아 세상을 떠돌거나

  피로 물든 칼을 바라보다

  스스로 허무를 버리는 것은 아닌지

  녹슨 허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무림의 배후를 조직하다 실패한 방주의 허명처럼

  태어나자마자 적의 칼날에 죽어간 죽순은

  어둠의 둥근 유형이다 베면

  베이리라 마디마디마다 배신이 숨어있는 죽문의

  금과옥조다 우후, 위험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허망하게

  장엄하게 잘린 잘려서 내 젓가락을 기다리는

 

  너는 원수는 누구인가

     -전문(p. 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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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시집 『어쿠스틱 기타』에서/ 2024. 1. 25. <詩人廣場> 펴냄

  * 문설/ 2007년 『시와경계』로 등단. <한국시인협회> <숙대문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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