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다 외 1편
함태숙
천사는 고아처럼 버려져서
자기가 만든 환각으로만 천국을
상상할 수 있다
자급자족만큼 슬픈 게 있을까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를 받치고
천국이 음악이라면
돌들의 청음을 듣기 위해 바닥에 깔리겠지
지하를 한 번도 손보지 않은
천국의 지붕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층의 방
천사가 걸으면 눈물방울에도 소리가 난다
버려진 것들을 둥글게 둥글게
부르는
도레······
홀로 불러보는 이름처럼
잊혀도 남아 있는 다정한 음계를 가여운
천사가 떠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발밑의 천국을
-전문(p. 1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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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이 거대한 짐승을 끄고 돌멩이 하나에 눈둥자를 묻는 것을 보았다
영원에 필적하는 것들이 하나의 우연과 하나의 개별성에 의탁해 오는 밤을
별과 돌의 공명
내포하기 위하여 분열한 것들
지금 오는 것은 돌아오는 것이다
자기를 애도하기 위하여
빛은
작은 돌처럼 꾸르륵 꾸르륵 소리를 내며
지워진 멧비둘기 식도 안에서 피어난다
아난다여, 이제 나의 입은 어느 곳에 묻을 것인가
불타는 심장으로부터 분리된 첫 번째
환각을
사라지는 얼굴에 드리우고 드리우고
-전문(p. 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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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가장 작은 신』에서/ 2024. 1. 25. <한국문연> 펴냄
* 함태숙/ 강원 강릉 출생,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새들은 창천에서 죽다』『그대는 한 사람의 인류』『토성에서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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