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작은 신
함태숙
흰 비닐 주머니에 휴지 같은 돈을 쑤셔 넣고
너는 또 큰 눈을 깜빡인다
우수수 온 도시가 다 사원이라는
그 이름의 석불에서 분진처럼
경전이 쏟아진다
소음은 가장 거룩한 침묵
시엠레아프의 밤 골목을 나와 짤그랑거리며
너는 다른 세상을 밟아간다
가장 높다는 수미산 거기서 무얼 태우는지
네 가는 발자국에
흰 재가 소복하고
뿌리 끝에 진흙을 묻힌 채
꽃들은 흰 봉다리 같은 입을 오므렸다 벌린다
무지하고 천진한 맨발의 행렬이여
구원은 왜 걸인처럼 자꾸자꾸 내려오는 걸까
버짐 핀 검정 개와 매 맞는 저녁을 불러와서
-전문(p. 121)
시인의 말
네 번째 시집을 묶는다
그리고 2월 20일은 한 사람의 첫 기일이다
가장 작은 신에 입관한다
2024년 1월
함태숙
---------------------
* 시집 『가장 작은 신』에서/ 2024. 1. 25. <한국문연> 펴냄
* 함태숙/ 강원 강릉 출생, 2002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새들은 창천에서 죽다』『그대는 한 사람의 인류』『토성에서 생각하기』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려니숲*/ 문설 (0) | 2024.02.18 |
---|---|
다정하다 외 1편/ 함태숙 (0) | 2024.02.18 |
애틋한 뒷모습 외 1편/ 김미옥 (0) | 2024.02.17 |
귀 걸어놓은 집/ 김미옥 (0) | 2024.02.17 |
바닥론 외 1편/한영숙 (0) | 2024.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