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타이탄/ 이재영

검지 정숙자 2024. 2. 18. 14:30

 

    타이탄

 

    이재영

 

 

  얼마 전 단 한 번도 바다에 가지 못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바다를 분필로 벽에 그려 나에게 보여 줬다 바다는 네모난 박스였다 그 안에 아이도 노인도 들어가 있고 물고기도 들어가 있고 별도 있고 태양도 있고 염소도 있고 텔레비전과 수도꼭지도 있었다 바다에는 도로가 나 있고 그곳으로 자동차와 말과 탱크가 있었다 이것이 당신이 생각하는 바다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바다를 한 번도 본 적 없어서 그냥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고 대답했다

 

  바다는 항상 입을 벌리고 있다 커다란 몸을 갖고 있어서 먹는 것도 많다 밤마다 태양도 먹고 아침마다 다이버들도 먹는다 바다에 능숙한 동물들은 해변으로 올라와 바다에 삼켜지지 않지만 삼켜진 것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하나같이 말이 없다 나는 무척 기쁘거나 무척 환상적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바다가 자기의 내부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기 위해 입단속을 시킨 탓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죽은 생선이 되어 처음 일기를 썼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아가미 달린 태양을 사 왔다 배를 가르고 내부를 씻었다 피가 씻겨 배수구로 빨려 들어갔다 어머니 저는 매우 아팠나 봅니다

 

  처음 바다를 봤을 때를 생각해 봤다 갯벌에선 죽은 조개 냄새가 났고 발이 푹푹 빠졌다 바다는 태양을 눈에 넣고 있었다 충혈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광경을 오래 보면 눈을 다칠 수도 있으니 그만 가자고 말하며 눈을 가렸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두꺼운 손가락을 열어 바다의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전문-

 

  시론/ 가끔 운동합니다> 한 문장: 예전 연인은 나를 밀어내는 것인지 들이는 것인지 모를 어떤 상태를 지속했다. 그럴 때마다 몇 편의 시를 적었고 몇 편의 영화에 나오는 몇 명의 삶에 나를 대조했다. 운동하듯 규칙적으로, 몇 라운드가 지속되었거 관계는 끝났다. 가쁜 들숨과 날숨을 몰아쉬며 각자의 집으로 갔다. 형광등이 켜지고 형광등이 꺼자며 서서히 나의 들숨과 날숨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시 p. 109 / 론 68-69)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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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3-겨울(31)호 <issue 비등단/ 신작/ 시론> 에서  

  * 이재영/ 곧 첫 시집 발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