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발(滿發)/ 서상만 만발(滿發) 서상만 늙은 대추처럼 쪼글쪼글 흑화 만발 가끔 백발이 눈을 가릴 때 어디로 그만 떠나고 싶어선지 간신히 고개 드는 관음이여 '나 아직 이렇게 살아 있네' 흐흠 흐흠 헛기침 두 마디로 일파만파 생의 말씀 이미 구층탑이다 이른 새벽시장, 소쿠리 엎어 놓듯 웅크린 등이 살아 ..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7.02
빗소리/ 최형태 빗소리 최형태 비가 잦아들 기미는 없었다 차들의 질주하는 소리를 뚫고 비는 내렸다 빗소리는 듣기 좋았다 그러나 빗소리보다도 비를 가르는 차들의 소리가 더 커서 빗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대신 불빛이 있는 어디서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게 보였다 그건 ..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7.01
날개의 무게/ 조용미 날개의 무게 조용미 모든 순간에는 끝이 있다 저 나비도 그걸 알고 있다 비오는 날이면 늘 나비들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복사꽃 옆을 지나다 다시 돌아왔다 날개를 접고 꽃잎 아래 매달려 있다 더듬이와 암술이 구분 되지 않는다 큰줄흰나비 날개가 다 젖어 있다 무거워진 날개가 나비..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7.01
표백/ 이장욱 표백 이장욱 나는 어딘지 몸의 빛깔이 변했는데 내가 많이 거무스름하였다. 끌고 다닐 수가 없어서 잘 표백을 시키고 너무 백색이 된 뒤에는 침묵하였다. 당신이 추측을 했는데 저것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존재해도 허공을 닮을 뿐입니다. 저런 것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6.26
이러다간/ 김형영 이러다간 김형영 머지않아 닥칠지 몰라. 이러다간 어느 순간 밀어닥칠지 몰라. 봄이 왔는데도 꽃은 피지 않고 새들은 목이 아프다며 지구 밖으로 날아갈지 몰라. 강에는 썩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들은 배를 드러내놓고 떠다닐지 몰라. 나무는 선 채로 말라 죽어 지구에는 죽은 것들이 판을..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6.25
돈/ 박순원 돈 박순원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용기를 주세요 아니 지혜 용기 따위는 필요 없어요 돈을 주세요 그러면 그 돈으로 지혜를 사지요 용기도 사지요 지금이라도 당장 돈만 있다면 더 지헤로워질 것 같아요 용기도 마구마구 생길 것 같아요 나를 못살게 구는 것들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너그..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6.25
무언극(無言劇)처럼/ 박완호 무언극(無言劇)처럼 박완호 나무 몇 그루 무언극(無言劇) 대사처럼 서 있었다. 등화관제의 기억에서 걸어 나온 그림자가 새벽 부둣가에 다다르고 있었다. 발화되지 못한 외마디가 밀사(密使)처럼 눈앞을 스쳐 갔다. 바람꼬리에 매달려 가는 소리를 쫓아 나는 말이 보이지 않는 데까지 따..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6.25
비문/ 문정영 비문 문정영 잠자리가 떠 있는, 길과 하늘이 흔들린다, 잠시 누군가 물어도 엉뚱한 답을 적는 계절, 길의 바깥쪽으 로 돌아가면 비문이 있고 내 눈가로 잠자리 떼가 비행운 처럼 스쳐 지나간다 묻고 답하는 것이 한때의 유머처럼 장난스러운 적이 있었다 물어도 다른 답을 기록한 것들이 ..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6.25
얼굴이불/ 유안진 얼굴이불 유안진 쌈지공원 벤치에 길게 누운 누굴까? 알든 모르든 상관없는 그는 코까지 골고 잔다 폭발사고 추락사고 사망자 부상자… 몸서리치는 사건 사고들 울부짖는 신문지를 덮고도 코나팔 불며 쏴 다니는 그의 단잠 세상은 과연 어디일까? -게재지 : 계간문예- * 『시향』2015-여름..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6.25
접도(蝶道)/ 이선균 접도(蝶道) 이선균 막 우화한 물결나비가 우편함 속으로 날아와 숨을 할딱이고 있다. 파문을 일으키며 날아드는 시집 날개를 펼치면 내 이름이 손글씨로 적혀있지. 나는 겹눈을 굴려 나비의 내상(內傷)을 읽는다. 눈부신 상처에서 꽃냄새를 맡는다. 상처의 모서리를 접고 또 접으며 날개.. 잡지에서 읽은 시 201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