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비문/ 문정영

검지 정숙자 2015. 6. 25. 23:24

 

 

     비문

 

     문정영

 

 

  잠자리가 떠 있는, 길과 하늘이 흔들린다, 잠시

  누군가 물어도 엉뚱한 답을 적는 계절, 길의 바깥쪽으

로 돌아가면 비문이 있고 내 눈가로 잠자리 떼가 비행운

처럼 스쳐 지나간다

 

  묻고 답하는 것이 한때의 유머처럼 장난스러운 적이

있었다 물어도 다른 답을 기록한 것들이 사후에 발견되

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에 어떤 증세가 들어서고, 무언가를

물으면 나는 흐린 답변뿐이다

  이제 무언가 명확하게 답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는 아

닐까

  그래서 조금은 흐리게 잠자리 떼가 날아가는 것을 계

절 탓이라 여기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보면 나도 가끔은 쓰이지 않은 비문일 것

이다

 

 

            * 『시향』2015-여름호 <신작>

            *  문정영/ 1997년『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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