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4 4

이태동_ 봄의 들판에서···/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었다 : 윌리엄 워즈워스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었다      윌리엄 워즈워스(영국 1770-1850, 80세)     이태동 번역(영문학자, 서강대 명예교수)    계곡과 산 위에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다 나는 문득 보았네.  수없이 많은 금빛 수선화가  호숫가 나무 아래  미풍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   은하수에서 빛나며  반짝이는 별들처럼 길게 연달아  수선화들은 호반의 가장자리 따라 끝없이 줄지어  뻗어있었네.  나는 보았네. 무수한 수선화들이  흥겨워 머리를 흔들며 춤추는 것을.   수선화들 옆 물결도 춤췄었으나,  환희에 있어 그것들이 반짝이는 물결을 이겼었지.  이렇게 함께하는 즐거움 속에  시인이 어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나는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이 광경이  어떤 값진 것을 내게..

외국시 2024.07.24

수평선/ 문화인

수평선      문화인    늘 흔들리는 몸  늘 방황하는 마음   멀리 달아날까 봐  바람 불면 더 멀리 날아갈까 봐   생을 지상에 꼭 묶어놓은 선  고무줄 하나   흔들리는 바다에 늘었다 줄었다  몸을 대단하듯   눈물을 닦아주고  보폭을 맞추며   긴 세월 홀로 가는 바다를  꼭 안고 있다     -전문(p. 62)   ---------------------* 군산시인포럼 제4집『바다의 메일』에서/ 2024. 6. 5.펴냄  * 문화인/ 2012년 『한국시』로 & 2024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언젠가』

헤아려보는 파문 외 1편/ 한영미

헤아려보는 파문 외 1편      한영미    미루나무 물그림자 어른거리는 연못에  돌을 던진다   파문이 일렁일지, 퍼질지  음 소거하고 상상하는 동안   이해할 수 없는 나의 퉁명이  제법 옴팡지다는 걸 알게 된다  찔끔 구름이 비췄으므로   마음은 부유물이 많아서 탁할 때가 있다  어수선하게 떠 있던 자존심도  가라앉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나무는 가지 하나 늘어뜨려  그 속이 안녕한가,  동심원을 모으고있다   던져진 돌의 파문이 누군가에게 밀려갈 때  나도 그 주름일 수 있겠구나, 라는  변명에도 구차한 무게가 있다니   공연한 구름이어서  수면 아래 속내에 영향을 미친다  서식이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자리 잡아주는 일이라고   비견할 만한 또 다른 파문을 내 안에 둔다  흔들려 깨진..

마술의 실재/ 한영미

마술의 실재      한영미    무대 한가운데 상자가 놓여 있습니다 그가 내부를 열고 빈 속을 관객에게 확인시킵니다 그런 다음 나를 지목해 그 안에 넣습니다 상자를 닫는 동안 한 번 더 객석을 돌아봅니다 몸을 구부려 넣는 사이 자물쇠가 잠깁니다 인사가 장내를 향해 경쾌하게 퍼집니다 시작은 언제나 이렇게 단순합니다 그가 긴 칼 꺼내 듭니다 구멍이 숭숭 사방으로 열려 있습니다 하나씩 칼이 꽂힙니다 정면이기도 측면이기도 합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자를 회전시키고 뒤집습니다 비밀 따윈 애초에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입니다 다리가 잘리고 팔이 잘리고 마침내 소리 없는 비명이 잘려나갑니다 그가 동백을 생강꽃이라고, 씀바귀를 신냉이리고 주문을 욉니다 나는 생강꽃이 되어 생강   생각   바닥 두드리고, 씁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