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이태동_ 봄의 들판에서···/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었다 : 윌리엄 워즈워스

검지 정숙자 2024. 7. 24. 16:19

<외국시>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었다

 

     윌리엄 워즈워스(영국 1770-1850, 80세)

     이태동 번역(영문학자, 서강대 명예교수)

 

 

  계곡과 산 위에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다 나는 문득 보았네.

  수없이 많은 금빛 수선화가

  호숫가 나무 아래

  미풍에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

 

  은하수에서 빛나며

  반짝이는 별들처럼 길게 연달아

  수선화들은 호반의 가장자리 따라 끝없이 줄지어

  뻗어있었네.

  나는 보았네. 무수한 수선화들이

  흥겨워 머리를 흔들며 춤추는 것을.

 

  수선화들 옆 물결도 춤췄었으나,

  환희에 있어 그것들이 반짝이는 물결을 이겼었지.

  이렇게 함께하는 즐거움 속에

  시인이 어찌 즐거워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나는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이 광경이

  어떤 값진 것을 내게 가져왔었는지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따금 멍하니 아니면 깊은 생각에 잠겨

  장의자에 누어 있을 때면

  수선화 꽃무리들이 반짝인다,

  고독의 축복인 내면의 눈에.

  그러면 내 마음 기쁨에 넘쳐 수선화들과 함께 춤을 춘다.

     -전문-

 

  의 들판에서 자연과 만나는 기쁨 _이태동/ 영문학자 · 서강대 명예교수

  아무리 일상적인 삶에 묻혀 사는 사람일지라도 부활절이 있는 봄을 맞게 되면, 신비로운 자연의 변화와 경이驚異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라. 겨우내 얼어붙었던 죽음의 땅에서 라일락이 피어나고 메마른 땅이 녹색으로 물들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어스는 그의 '누이에게'란 시편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3월의 첫 번째 따뜻한 날이다/ 매 순간 감미로운이 더해 가누나/ 울새가 문 곁에 서 있는 큰 낙엽송에서/ 울고 있구나.

 

  문학사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대해 시를 쓴 시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워즈워스만큼 자연을 대상으로 철학적인 명상을 담은 아름다운 서정시를 쓴 시인은 극히 드물다. 그가 위에서 '누이'에게 봄이 찾아온 밖으로 나오라고 한 것은 자연에 대한 그의 낭만적 개념과 의식 때문이다. 그에게 자연 세계는 죽어 있는 물체 덩어리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있는 느낄 수 있는 현실'이다. 그의 시적 인식 범위에서 자연의 플랜은 완전하고 신성하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에게 필요한 진리와 도덕 그리고 지혜의 원천이기 때문에,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을 가질 때 환희의 기쁨을 가질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워즈워스의 철학적 주제는 그의 시 세계 전편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그의 불후의 명시名詩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거닐었다」 역시 번역으로 인해 언어의 빛이 흐려졌지만, 인간과 자연과의 근원적인 관계를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짧고 간결하지만, 여백과 음악적인 흐름, 그리고 수선화의 이미지를 통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話者인 시인은 '계곡과 산 위를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봄의 들판을 거닐다가 호숫가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수선화가 미풍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게 되는 행복한 충격적 경험을 갖는다. 그후 그가 이따금 장의자에 누워 깊은 생각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을 때, 수선화와 함께 했던 기억이 그에게 기쁨과 위안을 준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인간이 자연과의 교감은 물론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 화자는 은유적으로 자연적인 현상 구름과 비유되고 있고 수선화는 계속해서 의인화擬人化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에 내재內在하는 통일성을 의미하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특히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할 때 느끼는 기쁨을 노래한 마지막 부분은 자연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경험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일대 제프리 하트만은 수선화 꽃무리가 시인의 '시각적 스펙트럼'에 너무나 강렬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상상력이나 환각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또한 '초원의 빛'과 같이 하는 플라톤 세계에서 오는 '아우라'로 해석하고 있다. (p. 시 8/ 론 9)

 

  * 블로그 註: 위의 시, 영문은 『문학의 집 · 서울』 2024-3월(265)호 8쪽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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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의 집 · 서울』 2024-3월(265)호 <세계의 名詩 산책 (1) -영국편>에서 

  * 이태동/ 영문학자, 서강대 명예교수, 평론집 『나목의 꿈』『한국 현대시의 실체』등, 수필집『살아 있는 날의 축복』『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