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30 3

황유지_파롤의 빈손이 떨려올 때(발췌)/ 들쥐와 낙엽 : 김건영

들쥐와 낙엽      김건영    신자유주의의 모기가 방안을 떠돌고 있다 겨울에도 모기가 있다 자유란 얼마나 가려운 것인지 집이 부풀고 있다 굴러다니는 것들이 바깥에 있다 밟으면 부서지거나 터지는 것들 안에서 바깥으로, 다시 바깥으로부터 안으로의 검열이 있다 어린아이가 길에서 은행잎을 줍는 것을 보았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을 여닫는 사이 길에서 은행잎을 줍는 것을 보았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을 여닫는 사이 들이지 않은 것들이 들어온다 저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검역 속에서 막아야 하는 것들 속에서 내가, 내가 자주 집으로 돌아온다 쌀에도 벌레가 있다 이 집은 안전하니 한 마리쯤 더 키웠으면 좋겠군 그 은행잎들은 어디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모든 집..

세상 가장 작은 뼈에게▼/ 정끝별

세상 가장 작은 뼈에게▼        정끝별    귓속 고막에서 달팽이관 사이  귓속뼈를 이루는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라는 가장 작고 가벼운 뼈들이 가장 나중까지 듣는다기에  들을 때 속귀의 귓속뼈들이 움직인다기에   임종을 선고한 의사가 나가자  아직 따뜻한 엄마 겨드랑이에 손을 묻고  엄마 귀에 대고 말했다   엄마의 가장 작은 뼈들을 내 작은 목소리로 어루만지며   엄마,   엄마가 돌아간 시간을 잘 기억할게  엄마도 잘 기억해서 그 시간에 꼭 찾아와야 해      -전문(p. 80)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 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  * 『현대시』..

추모-시) 퀸/ 이초우

추모>     퀸     이초우(1947-2023, 76세)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언제나 어린 나를 손잡고, 난 아빠와 결혼할래, 내 고갱이 속에  아버지가 자꾸만 자라나는 여왕의 자리에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었어요.   내 머리카락은 광명단처럼 붉었고, 우아한 인형의 옷 같은 내 원피스, 격조 높은 붉은색 유화를   그렸지요 여왕이 돼 가던 나의 아버지, 전교 수석이란 날 유령처럼 희롱한 그 아이들, 함께했던 나의 하느님은 몸시 바쁘셨나 봐요.    내가 세상의 디자인을 구상할 때였어요. 어쩐지 난 두 개의 손만으론 내가 여왕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나는 시시각각 우아! 하고 절규하곤 했지요. 그날 밤 나는 푸른 두 손바닥 위에 부처의 얼굴을 디자인해 넣었어요. 오! 나의 또 다른 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