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6 3

거미줄 외 1편/ 박재화

거미줄 외 1편      박재화    밤 산책로 얼마쯤 어둠에 잠겼다가 저쪽 아파트 불빛 따라 트이기도 합니다 날마다 찾지만 같은 듯 다른 공기 숲냄새 살아 있어 좋습니다 다만 얼굴 스치고 떨어지는 거미줄에 가슴 싸아합니다 그의 무척이나 힘들었을 노역을 이리 쉬 허물다니···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그러면서 한편 의아합니다 여기 무슨 날것들 있다고 거미줄 치나? 아파트 들어서면 사람들 몰려오면 얼른 물러나야 하지 않나? 사람 무서운 줄 모르다니 참 바보 같습니다 어구나 그처럼 하릴없는 기다림이라니! 이젠 기다리지만 말고 여섯뿔가시거미처럼 먹이 찾아 나서라 권하고픈 밤입니다    꽤 오래 무시무시한 소리에 먼지 대단하더니 숲이 사라졌습니다 때없이 사람들 나타나고 밤도 예같지 않습니다 조금 남은 나무들 풀들 ..

단체 카카오톡 외 1편/ 박재화

단체 카카오톡 외 1편         난중일기外史 · 2      박재화    한밤중 달려드는 까톡까톡 소리  단체 카카오톡을 나올 수도 없고  휴대전화를 진동 처리하면서  충무공의 수고를 생각는다  계사년* 전란 속 여름날  같은 내용의 편지를  접반사, 도원소, 순변사, 순찰사, 병사, 방어사 등  여섯 군데나 보내야 했던 충무공  의관을 정제하고  먹물 듬뿍 찍어 정성껏 보고서를 썼음  더러는 고쳐 쓰고 처음부터 다시 썼음  비 내리는 운주당運籌堂**의 충무공을     -전문(p. 48)    * 왜인들이 쳐들어 왔던 임진년의 다음해, 1593년   ** 충무공의 서재 겸 집무 공간으로, 합동 작전계획의 산실       -------------------------------------    아프지..

황금빛 나무를 그리다/ 정영숙

황금빛 나무를 그리다      정영숙    희부연 하늘 등에 지고  허공에 검은 점으로 떠 있는 황조롱이  어제도 들렸고 그제도 들렸던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다   흐린 하늘에 내 귀가 물든 것인가  황사 바람이 새의 목젖에 모래알을 가득 채운 것인가  지하에 누워 있는 시황제의 영靈이  지상에 다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인가   눈빛 나누며 마주 볼 작은 공간도 없이  허공을 떠도는 저 황조롱이  혼돈의 아우성 속  차라리 조롱 속에 갇히고 싶다   물 한 모금, 조롱 속에 넣어줄 손이 없어  순수의식은 익사한다*   푸른 하늘을 날 수 없는 시대  한 평 반의 갇힌 방에서  붉은 심장을 갈아  우리 모두 사랑 노래 부를 수 있는  황금빛 나무를 그린다     -전문(p. 118-119)     * 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