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1 12

길을 찾아가는 바다/ 김차영

길을 찾아가는 바다      김차영    실개천에 태어나  강을 지나 바다로 나가 보았다   섬으로 가는 길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심해의 터널   바다가 환해질수록 쌓이는 어둠,   투잡, 쓰리잡을 해도 멀어지는 섬  성장하는 물고기 포기부터 배워  삼포, 오포, 칠포 세대로 이어지다  다포 세대가 되어가는 요지경 바닷속   그 속에서  남이 아닌 내가 되어  하찮은 조개껍질을 모으며  나만의 바닷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문(p. 49) ---------------* 군산시인포럼 제4집『바다의 메일』에서/ 2024. 6. 5.펴냄  * 김차영/ 2021년『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미이라의 숲』

정체전선/ 류성훈

정체전선     류성훈    아버지가 심은 호박들이 가뭄에 모조리 죽은 다음 장마가 시작된다 나는 당신 대신 화를 냈고 당신은 호박 대신 내게 화를 냈다 뭐든 때를 맞추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구청에서 무수히 심었던 들꽃이 중장비에 다 엎어지는 공원에서 이럴 거면 왜 심었냐고 행인들이 허공에 따졌다 나는 허공에게 욕을 먹었다  잡초만 뽑다 벌써 무릎이 아프고 완전군장으로 산 몇 봉우리를 넘어 다니던 관절은 언제 어디로 가 버린 건지, 아무도 아무에게도 안부를 묻지 않던 그때부터 우리는 잡초만 뽑았다 작년에도 올해도 소나무 탁상에 생긴 새 구멍에서 톱밥이 다시 쏟아져 나왔고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고 자부했다  호박잎보다 더 큰 토란잎보다 더 큰 해바라기 잎이 지나가던 볼살을 긁으면 피부보다 따가운 태양이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