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4 5

폭설/ 이건청

폭설     이건청    말들이  떼 지어 달려오더라  진부령 넘어  미시령 넘어, 말들이  달려와  쓰러지더라  무릎을 꿇더라  엎어지더라  겨울 바다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  손짓하는데  마루턱에서 마루턱으로 허위허위 달려온  추운 날들이  폭설 되어  흩날리는데  일망무제, 수평선 뜬 곳까지 달려온 내 말들이  흔들리는 손짓들 쪽으로 달려와  퍽, 퍽, 엎어지며 흩날려 내리는  겨울 화진포    -전문(p. 20)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서/ 2024. 6. 5. 펴냄  * 이건청/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실라캔스를 찾아서』『곡마단 뒷마당엔 말이 한 마리 있었네』 외 다수

붉은빛 서대/ 김왕노

붉은빛 서대      김왕노    바닥을 박차고 나왔다 장대 끝에서  노을로 꾸덕꾸덕 말라 맛 들어가며  몸은 붉게 물들어 간다.   바닥에 착 달라붙은 밑바닥 생활이었으나  온몸으로 꼬리에 꼬리를 치며  바닥을 차고 오른 것은 일생일대의 혁명  하나 그물을 피할 수 없는 서대였으므로  밑바닥을 쳤기에 아득한 장대 끝에 이르러  온몸에 소금꽃 피도록 바다를 바라본다.   입맛 잃은 세상에 짭쪼름한 서대찜으로  밥상에 놓인다 한들 한 번 바닥을 치므로  지고지순한 허공에 이르렀기에 후회 없다고  탕탕 큰소리치며 양상군자처럼 허공을  독차지하고 붉게 물들어가는 서대 한 마리      -전문(p.22)  ---------------*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에서/ 2024. 6. 5. 펴냄  *..

커피하우스에서 생긴 일/ 이정현

커피하우스에서 생긴 일      이정현    문래역 모 카페에서 B를 기다리며 끄적인다  커피값 영수증에 오선을 그리고  높은음자리표랑 음표랑 쉼표 몽땅 그려 넣어도  지루함에 색다른 지루함으로 옮겨 앉는다   영수증을 뒤집어 글자가 가득 박힌 종이 위에    아메리카노는 쓰다 써서 맛있다, 고 쓴다  투 샷만큼 진환 기다림으로 말똥거릴 때  내 등을 치는 이, B다  환하게 안아주는 웃음이 마키아토처럼 일어나  내 손 위에 얹힌다  잘 포개어져 욜랑거리던 어느 긴 봄날.     -전문(p. 253)   ---------------------- * 『한국시학』 2024  여름(70)호 에서 * 이정현/ 2016년『계간문예』로 등단, 시집『점』외 3권, 평론집『60년대 시인 깊이 읽기』

주암정에서 뱃놀이/ 김다솜

주암정에서 뱃놀이      김다솜    오래된 유물 닮은 전설의 그 배는  소나무향기와 금천 물소리를 가득 싣고  연꽃 가득한 연못을 지키는 병풍입니다   거센 눈보라와 태풍에 사라지지 않은  한 폭의 풍경화는 장마와 가뭄을 견디고  뱃고동 소리 없이 항해하는 버팀돌입니다   주암정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던  선비들을 꿈꾸는 미래로 초대를 했지요   21세 장원급제한 난재 채수蔡壽 6세손  채익하가 머무는 정자에 꽃과 새들이 모여  어기영차 꽃놀이와 뱃놀이를 즐겁게 합니다   그곳에 머물고 있는 귀한 배를 타고  채수 후손들은 경천섬 바라보는 낙동강  문학관 설공찬전축제 참석을 하셨지요      -전문(p. 246)   ---------------------- * 『한국시학』 2024  여름(70)호..

아무도 오지 않아서 좋은 여름 외 1편/ 김해화

아무도 오지 않아서 좋은 여름 외 1편      김해화    보냈다  그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떠났다  그이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비우고 간 곳에 봉숭아를 심었다  채송화도 심었다   피지 않던 꽃들이 피었다  봉숭아도 채송화도 피었다  고향 떠난 뒤로 오랫동안 꿈꿔왔다   꽃밭에 비로소 비다운 비가 온다  아무도 오지 않아서 좋은 여름이다     -전문(p. 202)       ------------------------------    코로나 2021 추석    명절 맞네  외제차 고급차 줄을 서서 골목길 올라가네  환하시네 푸른 하늘 햇살   대문이라도 걸어 잠그고  12퍼센트 고소득층 통장잔고 23만 원 감추고 싶지만  세든 집 대문간에 문짝이 없네   어둔 방에 숨어 있자니 마당에 봉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