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나무를 그리다
정영숙
희부연 하늘 등에 지고
허공에 검은 점으로 떠 있는 황조롱이
어제도 들렸고 그제도 들렸던
노랫소리 들리지 않는다
흐린 하늘에 내 귀가 물든 것인가
황사 바람이 새의 목젖에 모래알을 가득 채운 것인가
지하에 누워 있는 시황제의 영靈이
지상에 다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인가
눈빛 나누며 마주 볼 작은 공간도 없이
허공을 떠도는 저 황조롱이
혼돈의 아우성 속
차라리 조롱 속에 갇히고 싶다
물 한 모금, 조롱 속에 넣어줄 손이 없어
순수의식은 익사한다*
푸른 하늘을 날 수 없는 시대
한 평 반의 갇힌 방에서
붉은 심장을 갈아
우리 모두 사랑 노래 부를 수 있는
황금빛 나무를 그린다
-전문(p. 118-119)
* 순수의식은 익사한다: W. B. Yeats의 시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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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6집 『시 터』 2021. 10. 22. <한국문연> 펴냄
* 정영숙/ 1993년 작품활동 시작, 시집『볼레로, 장미빛 문장』『황금 서랍 읽는 법』『옹딘느의 집』『물 속의 사원』『하늘새』등, 활판시선집『아무르, 완전한 사랑』, 명화 산문집『여자가 행복해지는 그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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