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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봉구_『부대끼는 멍청이의 에세이』中/ 사람과 인간 : 황봉구

검지 정숙자 2021. 1. 19. 02:25

 

    사람과 인간

 

    황봉구

 

 

  사람이 사람임이

  죄일 때가 있다

  사람임이 괜스레 미안하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만

  인간도 있다

 

  사람은 인간이지만

  인간은 사람이 아니다

 

  '개 같은 인간'

  쓰레기 같은 인간'

 

  인간은 본디 짐승이지만

  짐승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개새끼가 아니다

  인간은 쓰레기도 아니다

 

  인간은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은 인간이어야 한다

 

  사람은 짐승이 아니고 인간인데도

  '이 인간아'

  인간은 사람을 짐승인 양 쳐다본다

 

  그때이다

  인간임이 그리고 사람임이

  마냥 죄스럽기만 하다

    -전문, 시집 『생선가게를 주제로 한 두 개의 변주』(동학사. 2001)

 

 

  짐승과 인간> 한 문장: 갑작스레 짐승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나는 사람이니까 짐승이 아니다. 그런데도 짐승 생각이 자꾸 난다. 내가 짐승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짐승을 생각나게 해서도 아니다. 짐승은 보통 네 발이 달리고 몸에 털이 북실북실한 동물을 가리킨다. 사람은 본디 나무 위에서 살았고, 땅에서는 네 발로 걷다가 직립하여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진화했다. 짐승의 어원은 중생衆生이다. 중생은 불교에서 쓰는 용어로 모든 생명체를 뜻한다. 손발이 달린 짐승만이 아니라 목숨을 지닌 모든 생물을 총칭한다. 부처는 이 모든 중생이 개별적으로 불심을 지니고 있으므로, 노력만 하면 해탈에 이르러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한다. 참으로 부처님 마음은 한없이 넓어서 대자대비로 중생을 끌어안는다. 보잘것없는 미물에도 불심이 내재한다. 그 불심은 누군가 준 것이 아니라 자재한다, 불성佛性이 자재自在함이다. (p. 시 156-157/ 론 15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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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봉구 에세이 『부대끼는 멍청이의 에세이에서/ 2020. 12. 30. <아침책상> 펴냄

 * 황봉구/ 1948년 경기도 장단 출생, 시집『새끼 붕어가 죽은 어느 추운 날』『넘나드는 사잇길에서』등, 짧은 산문집『당신은 하늘에 소리를 지르고 싶다』, 여행기『아름다운 중국을 찾아서』『명나라 뒷골목 60일간 헤매기』, 음악 산문집『태초에 음악이 있었다』『소리의 늪』, 회화 산문집『그림의 숲』, 예술철학 에세이『생명의 정신과 예술』(1.2.3권), 산문집『바람의 그림자』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