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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선 평론집『호모 노마드의 시적 모험』中/ 경안리에서 : 강민

검지 정숙자 2021. 2. 8. 21:40

 

    경안리에서

 

    강민

 

 

  "이놈의 전쟁 언제나 끝나지. 빨리 끝나야 고향엘 갈 텐데." 

  때와 땀에 절어 새까만 감발을 풀며 그는 말했다

  부풀어 터진 그의 발바닥이 찢어진 이 강산의 슬픔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지치고 더럽게 얼룩진 그의 몸에선

  어쩌면 그의 두고 온 고향 같은 냄새가 났다

  1950년 8월의 경안리 주막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우리는 같은 또래끼리의

  하염없는 얘기를 나누었다

  적의敵意는 없었다

  같은 말을 쓸 수 있다는 행복감마저 있었다

  고급중학교에 다니다 강제로 끌려나와 여기까지

  왔다는 그,

  그에게 나는 또 철없이 말했었다

 

  "북이 쳐내려오니 남으로 달아나는 길"이라고

  적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고, 우리만

  하염없는 얘기로 밤을 밝혔다

  그리고 새벽에 그는 떠났다

 

  "우리 죽지 말자"며 내밀던 그의 손

  온기는 내 손아귀에 남아 있는데

  그는 가고 없었다

  냄새나고 지치고 더럽던 그의 몸과는 달리

  새벽별처럼 총총하던 그의 눈길

  1950년 8월 경안리

  새벽의 주막 사립문가에서 나는 외로웠다

     -전문-

 

 

  강민 · 역사의 소용돌이와 장수매(발췌)_ 정복선/ 시인 

  강민 시인과 장수매가 겹쳐 보이는 것은 시인의 이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시인의 이력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이 복잡하다. 시인의 몸이 바로 역사책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하다. 해방 후 중3 때 부친께서 돌아가시자 수업료가 없어서 중학교를 잠시 쉬며 민족박물관(현재 '문학의 집 서울' 자리)에서 사환으로 근무한 일, 6학년에 겨우 진학하자 한국전쟁이 터졌고 중학교 1학년 때 영문도 모르고 '독서회' 활동을 한 사실 때문에 전쟁 초기 학련學聯에 혹독한 시련을 겪고 군에 자원하여 몸을 보전하려다 국민방위군에 끌려가 숱하게 굶고 모진 고생을 하여 폐에 병을 얻은 일, 공국사관학교에 입학했으나 이과 계통인 학업이 적성에 맞지 않고 힘든 탓인지 병이 재발하여 공군병원에 6개월간 입원했다가 그만 공사를 거의 자진 퇴교한 일, 대구 성인학교를 거쳐, 동국대 국문과에 다니다가 다시 병의 악화와 등록금 문제로 대학을 졸업 못한 채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일 등.

  4 · 19 직후 정향사에 근무할 때는 일본소설 『인간의 조건』을 김시철, 민병산, 안동림 선생 등과 함께 번역 출간했고, 한국인 작가로는 최인훈의 『광장』을 추천하여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두 가지 모두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당시 필자는 중학생쯤, 폭발적인 인기 소설이어서 언니들을 따라 『인간의 조건』을 읽었고 주인공 '가지'가 만주에서 혹독한 시련 끝에 죽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록 적이었지만 가슴 아파했었다.)

  또 시인은 SF소설인 『황혼의 타임머신』을 썼으며 일본작품 『우주소년 아톰』을 처음 번역 ·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p. 시 88-89/ 론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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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복선 평론집 『호모 노마드의 시적 모험』에서/ 2021. 1. 15. <문학아카데미> 펴냄

  * 정복선/ 전북 전주 출생,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종이비행기가 내게 날아든다면』 『마음여행』 『여유당시편』 『시간의 칼은 녹슬고』 『맨발로 떠나는 사람』 등, 영한시선집 『Sand Relief』